“무역전쟁이 두렵지 않다”던 중국 지도부가 미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지난 11일 중국 국무원은 윤활유, 사료용 유청, 일부 항암제와 화학제품 등 16개 품목에 대해 지난해 7월 부과한 25% 추가 관세 대상에서 1년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 중 12개 품목에 대해서는 이미 부과된 관세를 환급해주기로 했다.
하루 뒤인 12일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기업들이 대두와 돼지고기 등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위한 가격 문의를 시작했으며, 양측 실무자가 고위급 협의를 위한 만남을 갖기로 했다고 했다.
상무부는 미국산 농산물 구매와 관련해 “중국산 제품 2500억 달러어치에 대한 관세 인상을 10월 1일에서 10월 15일로 연기한 미국의 선의적 조치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과세 연기에 대해 “중국 류허 부총리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관세 인상 연기는 오는 10월 1일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중국 공산당의 요청에 따른 것이지 미국의 자발적인 행동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국무원의 미국산 수입품 관세면세 조치에 대해 “중국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어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At the request of the Vice Premier of China, Liu He, and due to the fact that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ill be celebrating their 70th Anniversary….
— Donald J. Trump (@realDonaldTrump) 2019년 9월 11일
이러한 양측의 발언을 살펴볼 때, 중국이 미중무역전쟁에서 한발 물러선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중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중국 지도부가 지금 안팎으로 곤경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경제학자와 기업가, 투자자는 중국의 경제지표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보다 훨씬 악화됐다고 믿고 있다.
각국 애널리스트와 연구원들은 중국 통계국 발표가 아니라 에너지 소모량, 위성사진 등 다른 정보를 통해 중국 경제에 대한 더 정확한 데이터 산출을 시도하고 있다.
두 번째는 10월 1일 ‘대경축’ 행사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경제침체는 중국 지도부 스스로 더욱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10월 1일에 맞춰 관세를 인상한다면?
10월 1일 기념행사와 열병식을 통해 사회주의 자신감을 내세우고 경제번영을 과시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중국 인민을 속이는 일도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부는 대내적으로는 ‘사회안정’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백악관에 ‘구원요청’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중국이 미국산 제품 일부에 대한 관세를 철회한 이유다.
트럼프가 10일 존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을 전격 해임한 것과 역시 미중관계와 연관됐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유화적으로 바뀐 세 번째 이유다.
트럼프가 11일 기자들에게 밝힌 볼턴을 해임 사유를 보면, 둘 사이의 이견은 주로 베네수엘라, 북한, 이란 등 일부 외교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솔직히 그는 뭔가를 하고 싶어 하지만 꼭 나보다 더 강경하지는 않다. 존(볼턴)은 모두가 공인하는 강경한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 회의에서 “볼턴이 싫어하는 전쟁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판자들은 종종 트럼프에게 볼턴이 그를 불필요한 전쟁에 끌어들일 수도 있다고 상기시켰다고 전했다. 볼턴이 트럼프 행정부를 베네수엘라뿐만이 아니라, 북한과 이란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오랜 해외 무력개입을 끝내고 협상을 통해 이란, 북한 위기 등을 해결하려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를 철수하려는 것은 이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중국에 대해서도 강경대응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란·북한 문제에서도 강경대응하면서 미국의 전장을 확대하려는 볼턴의 방식은 중국을 집중적으로 압박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과 상충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최근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괴롭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8월 9일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며 “(김 위원장이)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로 미뤄볼 때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중국 공산당이 북한의 에너지와 물자 등을 빌미로 북한에 미사일 발사를 강요했을 수 있다. 미국의 관심을 중국에서 북한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속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일 “걱정하지 않는다. 단거리이고 아주 일반적 미사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위반이지만 미국과의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응은 미국이 북한 문제의 배후가 중국 공산당임을 명확히 알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부터 해결해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의식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트럼프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를 도발하는 중국 공산당의 상투적 수법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북한 외에도 이란을 배후에서 선동하여 미국을 도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란은 6월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에 접근하는 대형 유조선 2척을 대놓고 공격했을 뿐 아니라 미 해군의 QM-4C 무인정찰기 1대를 격추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속지 않고 세련된 방식으로 반격했다. 미국은 이란 핵협정을 탈퇴한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이란 1000개 기업, 최고 지도자, 외무장관 등에 전례 없는 제재를 가했다. 이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비율을 현재의 80%에서 10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높여 큰 타격을 줬다.
군사적으로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와 전략 폭격기 B-52를 중동에 배치해 이란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밖에 또 이란의 정보기관, 혁명수비대 컴퓨터 시스템을 사이버 공격하는 방식으로 반격했다.
중국 공산당은 북한·이란·베네수엘라 카드로 미국을 현혹해왔지만, 카드를 내미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미국을 새로운 한국 전쟁이나 중동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던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북한과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는 볼턴 보좌관 해임으로 오히려 간담이 더 서늘해졌을 것이다. 볼턴 해임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과학기술·금융‚인권 등 여러 방면에서 대중 압박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에 화해 손짓을 보낸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화해 손짓이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 12일 샹산(香山)의 혁명 기념지를 찾아 마오쩌둥을 추모하며 “중공은 낡은 세계를 깨는 데 능숙할 뿐 아니라 신세계를 건설하는 데도 능숙하다”라고 했다. 사회주의 중국은 외형을 바꾸는 데 능숙하지만 이번에는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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