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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전투, 생존을 위한 벌새들의 치열한 공중전

2025년 12월 29일 오후 5:07
 8월 말, 미니애폴리스 인근 크레이그 에머리치의 사유지에서 모이통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벌새들. | 크레이그 에머리치 제공 8월 말, 미니애폴리스 인근 크레이그 에머리치의 사유지에서 모이통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벌새들. | 크레이그 에머리치 제공

지난  여름, 사진작가 크레이그 에머리히(53)의 사유지 상공은 작은 전쟁터가 됐다. 벌새들이 그의 마당에 놓인 모이통을 차지하려고 서로 격렬하게 맞붙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의 기사들처럼 장엄하고도 격렬하게 공중전을 펼치는 벌새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녀석들의 경쟁심은 대단해요. 왜 저렇게 몸을 비틀고 날아다니며 싸우는 걸까 궁금했죠. 그 모습을 꼭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에머리히는  벌새들이 사납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연약한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벌새의 몸무게는 동전 한 닢보다도 가볍지만, 작은 날개는 초당 최대 80회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진동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매년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이틀마다 자기 몸무게에 달하는 꽃꿀이나 설탕물을 섭취해야만 한다.

비행 중 꽃의 꿀을 채취하고 있는 벌새.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에너지가 넘치고 늘 갈증에 시달리는 벌새가 식량원을 확보하는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자연스럽게 영역에 집착할 수 밖에 없고, 벌새 간에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에머리히는 올림픽 펜싱 선수를 방불케 하는 벌새들의 공중 결투 장면을 연속 사진으로 포착했다. 그가 촬영한 10장의 사진은 단 0.3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마리가 다른 벌새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고, 결과는 오직 운에 맡길 뿐이었다. 놀랍게도 사진 속에는 눈 깜빡할 사이의 찰나의 시간에 압출된, 마치 주짓수와도 같은 정교한 동작이 담겼다.

“너무 빨라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수 없어요. 사진을 보면 벌새 한 마리가 상대의 부리를 발로 움켜쥐고는 0.3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공중에서 완전한 원을 그리며 휘둘러 버리죠. 정말 놀라운 속도죠.”

지난 8월 말, 미니애폴리스 인근 크레이그 에머리히의 사유지에서 먹이통 점유권을 두고  공중전을 벌이는 암컷 벌새.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결투 도중, 암컷 벌새가 발로 다른 벌새의 부리를 붙잡고 있다.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암컷 벌새가 발로 상대의 부리를 붙잡은 채, 공중에서 상대를 원을 그리며 휘두르기 시작한다.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에머리히는 0.3초 동안 벌어진, 유도 동작을 연상시키는 원형 회전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에머리히에 따르면, 그의 소니 A1 카메라는 초당 30프레임 촬영이 가능하다. 그는 300mm 렌즈를 사용해,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순간까지 또렷하게 담아냈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과 필름 현상 과정에 매료되었던 에머리히는, 고래와 치타, 사자, 그리고 벌새에 이르기까지 대자연의 모든 생명체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하와이와 아프리카를 찾아 많은 동물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자신의 뒷마당을 찾아온 이 작고도 맹렬한 벌새들이었다.

그는 위스콘신 자택 마당에 먹이통을 설치한 후 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새들의 경쟁적인 행동이 눈에 띄게 격해지자, 그 현장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로 결심했고, 긴 기다림 끝에 이들의 비밀스러운 교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에머리히가 촬영한 마지막 사진 속에는 공중전 끝에 데크 바닥으로 내려앉은 암컷 벌새가 상대의 부리를 발로 짓누르며 승리를 선포하는 결정적 순간이 담겼다. | 크레이그 에머리히 제공

에머리히는 당시 상황이 마치 종합격투기의 그라운드 기술처럼 지상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녀석들은 수 분 동안 사방을 날아다니며 광기 어린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다 사진 속 암컷 벌새가 상대의 부리를 붙잡아 데크 바닥에 눌러버렸죠.”

그는 벌새들의 공중전을 이토록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인 만큼, 그의 사진은 공개된 후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박은주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