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현대 과학자들이 영성을 갈망하는 이유

2025년 09월 02일 오후 3:18
Illustration by Lumi LiuIllustration by Lumi Liu

깊은 밤, 한 생물학자는 자신이 빛이 된 듯한 체험을 했다.

배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수백만 마리 미세 플랑크톤이 내뿜는 청록빛으로 끝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물속으로 몸을 던지자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반짝이는 빛이 뒤따랐고, 온몸은 광채에 감싸였다.

사회학자 브랜든 바이디야나탄(Brandon Vaidyanathan)이 주도한 ‘과학과 영성’ 연구에 참여한 이 과학자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과학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은 나의 경이로움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과학과 영성이 별개의 영역이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흔들고 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학은 영적 갈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구실은 단순한 논리의 공간을 넘어 경이와 진정한 의미를 찾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 하나의 성당

과학과 영성이 대립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막스 베버의 이론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영적 갈망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가톨릭대학교 사회학자 바이디야나탄은 인도, 이탈리아, 영국, 미국의 생물학자와 물리학자 104명을 인터뷰한 끝에, 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과학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방식으로 영적 갈망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초상적이거나 신비로운 감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특히 과학이 그렇다”고 말했다.

바이디아나탄의 연구팀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영적 갈망을 느낄 때 어떤 단어들을 함께 사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텍스트 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

종교적 과학자들은 ‘믿음’, ‘기도’, ‘공동체’ 같은 단어로 갈망을 설명하며, 과학을 신성한 창조를 이해하는 통로로 본다. 반면 종교는 없지만 영적 성향을 가진 과학자들은 ‘자연’, ‘체험’, ‘초월’ 같은 언어로 감정적 연결과 영적 체험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영적이지 않은 과학자들조차 ‘호기심’, ‘의미’, ‘연결’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과 갈망을 표현했다.

세 집단을 잇는 공통된 열쇠는 바로 ‘경외심(awe)’이었다.

하버드대 마틴 노왁 교수는 “과학과 영성은 근본적으로 진리를 갈망하며, 경이로움과 경외의 순간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경외심’이라는 관문

과학과 영성의 조화는 오랜 역사 속 깊이 자리해 왔다.

갈릴레오는 별을 연구하며 그것이 신의 손길에 의한 것이라 믿었고, 뉴턴은 운동 법칙을 신성한 질서의 징표로 보았다. 영국 작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과학자가 된 것은 자연에 법칙이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자연에 법칙이 있다고 기대한 것은 입법자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신앙은 새로운 발견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견을 고무하는 원천이었다.

2023년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는 ‘과학의 영성(spirituality of sci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과학적 발상을 통해 얻는 의미, 경외, 그리고 연결의 감정을 뜻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과학의 영성’은 과학적 정보에 대한 더 강한 몰입과 학습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종교적 영성과 유사한 심리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에게서도 확인됐다.

이 같은 발견은 아인슈타인이 종교와 과학의 결합을 “우주적 종교적 감정(cosmic religious feeling)”이라고 묘사하며, 그것을 “과학 연구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동기”라고 여긴 이유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영성이 진리와 경이로움을 향한 근본적인 추동력을 공유한다고 믿었다.

현대 과학자들 역시 아인슈타인의 견해에 공감한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사브밋 칸왈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외와 놀라움은 우리가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 현실의 한 측면을 경험하게 해주는 관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문은 과학적 설명을 찾았다고 해서 닫히는 것이 아니다.

과학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존 레녹스는 설명이 서로 다른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왜 물이 끓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는 열이 수소 결합을 끊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차를 마시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두 답변은 모두 옳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질문에 대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발광 플랑크톤의 화학적 원리를 안다고 해서 그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대 세계에서 미시 세계까지, 과학 속에서 마주하는 성스러움

경외의 경험은 과학 탐구의 모든 범위에서 작동한다.

24년간 허블 우주망원경 운영에 참여했던 전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 천체물리학자 마리오 리비오는 허블 망원경으로부터 첫 이미지를 받았을 때 처음으로 과학의 영적 차원을 경험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달았을 때,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허블 딥 필드 | NASA and the European Space Agency. Edited by Noodle snack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물리적으로 우리는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인간의 지식이 확장되었기에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리비오는 말했다.

과학의 영적 차원 발견은 천문학의 거대한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이디야나탄은 인도의 한 생물학자를 인터뷰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그 생물학자는 자신이 연구하던 박테리아의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박테리아가 만들어 낸 바늘과 같은 물체를 가리킨 뒤, 바이디야나탄에게 3000년 된 힌두 사원의 기둥과 흡사한 확대 사진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것이 박테리아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스탐바(힌두 사원의 장식 기둥)’로 착각할 것이다.”

박테리아가 만든 바늘형태의 물체와 힌두 사원의 기둥 | Adapted from Schraidt et al., PLoS Pathog 2010, CC BY 4.0., Shutterstock

“우리가 그것을 직접 만들려 한다면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단 몇 분 만에 해낸다. 이는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다름없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과 영성의 접점

모든 과학자가 영적 갈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바이디야나탄의 연구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정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물질적 설명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끼며, 전통적인 합리주의적 관점을 유지한다.

그러나 칸왈은 “많은 과학자가 과학적 탐구와 영적 경험 사이에 전혀 충돌을 느끼지 않고 있으며, 언젠가, 어쩌면 수세기 후에는 우리의 영적 경험 또한 당연한 우주 법칙의 일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탐구해야 할 영역으로 간직해야 하며, 결코 과학에 반하는 무엇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바이디야나탄의 연구도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그는 연구 결론에서 “일부 과학자들이 영적 갈망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과학은 여전히 새로운 영적·실존적 탐구의 길을 열 수 있으며,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에게 독특한 영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