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혹은 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내면의 깊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예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술은 고독 속에서 태어난다.
위대한 음악가와 문호들은 이 점을 말해왔다. 모차르트는 친구에게,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음악이 찾아온다면서 “그 음악이 어디서 오는지는 나도 모른다”라고 했다.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는 방에서 홀로 자신의 뮤즈를 기다리는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손에 작은 플루트를 든 나의 소중한 손님. 그녀는 숄을 두른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가온다.”
이처럼 음악과 문학은 고독 속에서 잉태되지만,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만의 생명력을 얻게 마련이다. 그리고 온 세상을 떠돌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루틸리오 디 로렌초 마네티, ‘음악의 알레고리’, 17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 Public Domain
한 사람의 정신에서 만인의 가슴으로
음악이 일으키는 기적은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고양하고 확장하는 것이고, 그것이 일으키는 더 놀라운 기적은 고립되었던 영혼들을 하나로 융화시키는 것이다.

마사 M. 칙식스, ‘나의 조국, 그대를 노래하네’ 악보 표지, 1918, 미국 의회도서관 | Public Domain
하나의 뛰어난 생각이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경이로운 일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국경일 아침, 교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서서 ‘나의 조국, 그대를 노래하네’를 부르며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자유의 거룩한 빛으로, 우리 조국 영원히 빛나리”라고 노래했다. 음악이 지닌 위대한 힘,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빚어내는 음악은 우리를 바꿀 수 있으며, 또 이 광대하고 다양한 인류라는 가족 안에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서로 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지금도 아이들이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른다니, 참으로 아름답고 희망적이다.
풍부한 합창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웨일스의 국가(國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로 손꼽힌다. 웨일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스포츠 경기나 국경일이 되면 ‘마에 헨 울라드 버 나다우(Mae Hen Wlad Fy Nhadau, 나의 아버지의 땅)’를 부른다. “내 아버지의 이 땅,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곳”, “시인과 가수의 땅, 위인들의 고향. 용맹한 전사들과 고결한 애국자들이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땅”. 교회에서든 경기장에서든, 그들은 다른 나라처럼 제창하지 않고 풍성한 4부 화음으로 국가를 부른다.
독일의 국가는 하이든이 1797년에 작곡한 옛 ‘황제 찬가(Kaiserhymne)’의 선율에 아우구스트 폰 팔러슬레벤(August von Fallersleben)이 쓴 ‘독일인의 노래'(1841)의 가사를 붙여 부른다. 독일인들은 ‘통일과 정의와 자유’를 노래하는데, 이는 수많은 봉건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통일 국가로 나아가던 당시 모든 독일인의 가슴에 품었던 염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1796~1797년, 요제프 하이든, ‘황제 찬가’ 필사본 | Public Domain
신을 향한 찬가, 세상을 잇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Wachet Auf, BWV 140)에서 마지막 합창은 “사람과 천사의 혀가 주의 영광을 노래하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소박한 작품은 풍성한 화음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선율로 인해 ‘위대한 음악 유산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종교개혁을 이끌며 새로운 교회 교육 정책을 수립했던 마르틴 루터는 합창의 힘을 깊이 이해했다. 그는 모든 학생이 악보를 읽는 법과 화음으로 노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답고 선함을 찬양하며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노랫소리는 교회 교육의 주춧돌이자 핵심이었다. 토마스 만의 저서 ‘괴테와 톨스토이’에 따르면, 당시 하루는 언제나 노래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메아리는 현재도 메노나이트(Mennonite) 공동체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 대로 악기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완벽한 화음을 이루어 노래하고, 함께 모여 점심 식사를 할 때도 찬송가를 부른다. 그중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찬송가는 전통 민요 ‘나는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나?’이다.
미국의 위대한 음악적 유산, 흑인 영가(Negro spiritual)는 노예제도의 슬픔 속에서 탄생했는데, 노래들이 처음부터 아름답지는 않았다. 노예로서 청춘을 보낸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rick Douglass)는 “그때 노예들은 몇 마일이나 되는 빽빽한 숲을 그들의 거친 노래로 가득 메우곤 했다. 박자와 음정 모두 맞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장 큰 기쁨과 가장 깊은 슬픔을 담아 노래를 짓고 불렀다”라고 회상했다. 노예 해방 후, 흑인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그 노래들을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저 높은 빛나는 저택에서(In Bright Mansions Above)’는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이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의 노예였던 농노들 역시, 잠정적이긴 했지만, 자유를 얻었다. 노예든 자유인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노래할 때 그 소리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았다.
필자는 학생 시절에 ‘노예들의 나라’였던 소련을 여행한 바 있다. 그때 모스크바의 옐로홉스카야 대성당에서 신자들이 함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를 불렀는데, 거대한 성당 전체가 마치 하나의 종처럼 울려 퍼져 매우 경이로웠다. 그때 녹음한 소리를 지금 들어 보면, 비록 음질은 형편없지만 내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다. 그 끔찍했던 억압 속에서도 노래가 보여준 아름다움과 생명력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전례(典禮) 예배가 지닌 미덕이라면 그 안에 담긴 진리는 왜곡되거나 변질될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암울했던 소련 시절에 담당 사제가 KGB의 정보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신자들 앞에서 “주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라고 말했고, 신자들은 “아멘” 하고 대답했다.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윌리엄 홀먼 헌트, ‘옥스퍼드 막달렌 대학의 5월 아침, 고대 연례 의식’, 1888~1899, 캔버스에 유채, 영국 버밍엄 미술관 | Public Domain
나라와 계급, 인종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목소리를 높일 때 그 소리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아 있다. 훈련 받지 않은 평범한 목소리 하나는 투박하고 초라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백, 수천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진다면 그 소리는 숭고해진다. 마치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장엄한 바다를 이루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노래하는 걸까? 이는 결코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말을 하기 훨씬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종교적 의식에서 감정의 최고점과 최저점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려는, 거부할 수 없는 충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노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악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다고 여긴 나머지, 특정 계급이나 직업이 특정 종류의 음악을 부르거나 듣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음악에 인간을 타락시킬 수도, 고양시킬 수도 있는 힘이 있음을 알았다.
예술은 관념을 감정으로 바꾸어 놓으며, 음악은 우리가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형제애를 법률의 힘이나 군대 경찰의 힘으로 강요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자유의 거룩한 빛으로 우리 조국 영원히 빛나리”라고 노래할 때,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생각을 비로소 온몸으로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플라톤은 “지혜와 음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그의 덕을 지켜주는 유일한 구원자”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설령 느릴지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오는 응답의 시작은 아닐까.
*임은혜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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