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유리로 ‘이솝 우화’ 기반 예술품 제작한 밀론 타운센드

올봄, 밀론 타운센드는 미국 위스콘신에서 사라 마사릭과 그녀의 가족이 설립한 ‘플럼필드 리빙 북스 도서관(Plumfield Living Books Library)’에 대한 에포크타임스 기사를 읽었다. 문학에 대한 사라의 헌신과 그녀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타운센드는 최근 자신이 출간한 ‘이솝 우화(Aesop’s Fables)’ 책 한 상자를 그녀에게 보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각 우화마다 타운센드가 만든 아름다운 유리 조각상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이다.
이후 사라 마사릭은 에포크타임스에 타운센드를 소개했다. 그는 평생을 유리 예술에 바치고 그 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데 헌신해 온 인물이다.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이 ‘smiling’(스마일링)과 운을 맞춘다고 설명하며 자신과 책, 예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흉흉한 시절 아름다움을 전하다
많은 미국인이 그랬듯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인해 타운센드와 그의 아내 기요코는 외로움을 느꼈다. 팬데믹으로 인해 그들의 판매처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펜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생계를 잃었다. 저 같은 사람들 말이다.” 타운센드는 말했다.
“작품을 팔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었다. 모든 게 닫혔으니까. 그래서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운 고추를 심기도 하고,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도 했고, 집 주변의 덤불도 정리했다. 그러다가 전에 구입한 책 상자들을 정리하던 중 조지 타운센드(George Townsend)란 사람이 엮은 이솝 우화집을 발견했다. 나와 성이 같은 그 사람은 이야기 마지막에 도덕적 교훈을 넣는 방식을 고안한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래서 귀가 번쩍 뜨였다.”
그때부터 타운센드는 자신의 시간과 기술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의 한 해 동안 그는 매주 한 편씩 이솝 우화를 바탕으로 한 유리 조각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방울 달기’ 이야기에서는 연단 위에 방울이 올려진 장면을 중심으로 작은 검은 쥐들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조각했고 옆 벽 구멍에서는 고양이 발이 쑥 튀어나와 있다.
“‘여우와 포도’에서는 담쟁이덩굴이 얽힌 아치에서 늘어진 포도송이를 향해 목을 쭉 뻗은 붉은 여우를 표현했다”고 타운센드는 말했다.
“‘여우와 포도’ 같은 건 어떻게 표현할지 뻔히 보이는 부류였다”고 타운센드는 말했다.
“하지만 ‘도시 쥐와 시골 쥐’ 같은 이야기는 좀 더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긴장감과 위험성을 표현하기 위해 거의 덫이 닫히기 직전인 쥐덫 안에서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두 마리 쥐를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의 핵심 아이디어를 어떻게 형상화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는 각 조각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것을 온라인에 영상과 함께 게시했다고 말했다. 집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제가 이 작품들을 만든 이유는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그해가 끝날 무렵… 50개의 조각상이 생기게 됐다.”
그는 이 특별한 예술 작품들을 판매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각 조각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더 많이 촬영했고 자신의 이름을 공유한(조지 타운센드) 작가의 이솝 우화와 짝지어 책으로 출판했다.
장인(匠人), 예술가가 되다
타운센드의 유리에 대한 평생 사랑은 그가 십 대였을 때 시작됐다.
“나는 불에 관심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생물 실험실에서 유리관을 토치로 구부리는 걸 봤는데 그 곡선의 우아한 형태에 이끌렸다.”
타운센드는 그 실험실용 토치를 집으로 가져가 유리를 구해 실험을 시작했고 곧 유리에 푹 빠지게 됐다.
“그냥 내 침실에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간섭하지 않으셨다. 그게 참 놀라운 일이었다. 가끔은 연기가 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타운센드는 오늘날로선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을 했다. 18살에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파키스탄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프랑스에서 잠시 일하며 보석과 소형 유리 작품들을 만들었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그곳 고용주에게서 배운 방식대로 작품을 시장에서 팔고 도매로도 일부를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만든 작품들을 그냥 팔기 시작했고 그게 성공적이었다.”
타운센드에 따르면 자신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규율’이었다. 그는 그 자질의 기원을 젊은 시절에서 찾는다.
“아버지는 음악 선생님이셨다. 나를 튜바 연습실에 밀어 넣곤 ‘나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 연습하게 하셨다. 음악을 배우면 알게 된다. 음계, 아르페지오, 단순한 것, 복잡한 것들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음악이란 예술 안에서는 규율이 기본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방식을 유리공예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타운센드는 늘 열심히 일해 왔다고 설명했다. 거의 53년 동안 그는 하루 8시간에서 14시간 주 7일 내내 작업해 왔다.

“나는 타고난 예술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예술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아주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기술은 종종 재능을 훌륭하게 대체해 준다.”
그것이 기술이든, 재능이든 타운센드는 이제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만들었고 수십 년 동안 보석과 조각 작품을 예술 전시회나 미국 전역의 르네상스 페어 같은 행사에서 판매해 왔다. 그는 특히 인간 형상을 잘 표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시에 12년 동안 거주하면서 발레를 접하게 됐고 발레리나들의 역동성과 균형 잡힌 자세를 유리 조각에 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연구했다.
전수하는 일
타운센드는 가르치는 재능 또한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견습생을 받아 이들 부부와 함께 살게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수많은 책과 수십 편의 기사, 영상 자료를 제작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는 뉴욕주 코닝에 있는 ‘코닝 유리 박물관(Corning Museum of Glass)’에서 간헐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무료 온라인 플립북 ‘불꽃 작업: 삶이 된 예술(Flameworking: A Living)’의 서문에서 타운센드는 예술과 공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모든 분야 예술가들에게 통찰과 지혜를 전하고 있다.
“내용은 예술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예술이란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작업이다. … 대상의 아름다움은 작품 속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립북 ‘불꽃작업…’에서 타운센드는 주로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룬다. 예술의 주된 목적이 아름다움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있다 하더라도, 그는 이렇게 쓴다. “좋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제 가족과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데 필수적이다.”
가족이 타운센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 중에 잘 드러났다. 그는 텍사스에서 뉴욕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 기요코와 함께 차를 세우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타운센드의 아버지의 95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귀가 중이었고 2주 후에는 어머니의 95번째 생일과 부모님의 결혼 75주년을 함께 축하할 계획이었다.
“각각 95세, 95세, 75주년이다. 우리는 이걸 ‘265주년 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꽤 큰 행사다.”

대화가 거의 끝날 무렵 타운센드는 ‘이솝 우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서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방식, 즉 사회적 어휘의 일부가 얼마나 많이 이 우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는 게 정말 흥미롭다.”
타운센드는 자신의 유리 조각 작품을 통해 그 소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과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