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푸치니의 첫 오페라 ‘레 빌리’…간과된 걸작을 재조명하다

2025년 05월 17일 오후 6:59

몇몇 위대한 예술 거장들은 그들의 작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 거장들 역시 단지 인간일 뿐이며 그들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친 성장, 고난, 변화의 시기를 겪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음악 평론가들과 역사학자들이 작곡가들의 작품 전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연구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예술가가 경험과 성숙, 명성을 쌓아가며 작품이 발전했다고 본다. 그 결과 초기 작품들은 종종 미성숙하다고 여겨져 이후 걸작들과 비교돼 간과되거나 작곡가의 주요 작품 목록에서 제외되곤 한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년)의 초상화, 1900년대. ⎢ Kean Collection/Getty Images

위대한 작곡가들의 초기 작품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클래식 음악계와 그 팬들로 하여금 훌륭한 음악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유명 오페라 작곡가가 젊은 시절에 뛰어난 오페라들을 작곡했지만 이 작품들은 특히 프로 무대에서는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코모 푸치니의 첫 오페라 ‘레 빌리(Le Villi)’다.

우리 말로 ‘요정들’ 또는 ‘요정의 무리’라고 번역되는 레 빌리는 슬라브 민속에서 유래된 존재로, 배신당한 여인의 혼령이나 요정을 의미한다. 이들은 죽은 뒤 빌리가 되어 남자들을 춤추게 하여 지치게 만들고 결국 죽게 한다는 전설이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레 빌리는 바로 이 전설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푸치니가 25세 때 오페라 공모전을 위해 쓴 이 독특한 ‘발레-오페라’는 지금 다시 주목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오페라 공모전

푸치니는 1883년 이탈리아 밀라노 음악원에서 정식 음악 교육을 마쳤다. 그는 세포노 로켓티-몬테비티, 아밀카레 폰키엘리, 아민토레 갈리, 안토니오 바친니 등 저명한 이탈리아 작곡가들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졸업 작품으로 작곡한 관현악곡 ‘카프리치오 신포니코(Capriccio sinfonico, 교향악을 위한 자유곡)’는 1883년 7월 14일 공개 연주된 후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푸치니를 유망한 젊은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이후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였던 폰키엘리는 푸치니에게 오페라 작곡을 권유했고 그의 작업을 도우려 자신의 별장에 초대해 머물게 했다. 이곳에서 푸치니는 페르디난도 폰타나를 소개받는다. 폰타나는 언론인, 극작가, 시인이자 당시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대본 작가였다. 두 사람은 함께 푸치니의 첫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레 빌리가 탄생하게 된다.

극작가 페르디난도 폰타나의 초상화. 1929년 이전 이탈리아 화가 베스파시아노 비냐미 작. 인도 잉크 사용. 밀라노 리코르디 역사 아카이브 소장. ⎢ Archivio Storico Ricordi/CC BY-SA 4.0

푸치니의 후기 작품들은 사실주의적 성격과 동시대적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진실’ 또는 ‘현실’을 뜻하는 ‘베리스모(verismo)’ 음악 사조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첫 오페라인 레 빌리는 민속 전설과 초자연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오페라 계보를 따른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장바티스트 알퐁스 카르의 단편 소설 ‘레 빌리스(Les Willis)’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푸치니 오페라는 이 프랑스어 제목을 이탈리아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푸치니는 레 빌리를 이탈리아 밀라노의 음악 출판사이자 공연 기획사인 ‘카사 무지칼레 손조뇨(Casa Musicale Sonzogno)’가 주최한 네 차례의 음악 공모전 중 첫 번째 대회에 출품했다. 이 공모전은 한 번도 공연된 적 없는 단막 오페라를 대상으로 했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훌륭한 전통에서 영감받은’ 작품들을 찾고 있었다. 주제는 ‘목가적이거나 진지하거나 희극적’일 수 있었으며 레 빌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어느 정도 담고 있었다.

푸치니는 1883년 12월 마감일 마지막 날에야 작품을 제출했다.

심사위원단에는 그의 스승인 갈리와 폰키엘리 두 사람이 포함돼 있었으나 푸치니는 수상하지 못했다. 그의 악보가 읽기 어려워 탈락했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지만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은 폰키엘리가 의도적으로 제자인 푸치니를 수상자에서 제외시켰다고 믿고 있으며, 이는 수상자가 무명의 작곡가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푸치니를 수상자로 지명하는 대신 폰키엘리는 그를 저명한 출판인 줄리오 리코르디에게 소개했다. 리코르디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레 빌리는 1884년 5월 31일 밀라노의 오페라 극장 ‘테아트로 달 베르메(Teatro Dal Verme)’에서 초연됐다. 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뒀고 리코르디가 이 작품을 매입한 후 2막 형식으로 출판했으며 푸치니는 이로써 재능 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N. 베스타의 1885년 오페라 ‘레 빌리’ 광고용 스케치. ⎢ Public Domain

고전적인 오페라 레 빌리에는 단 세 명의 솔리스트가 등장한다. 소프라노 ‘안나’, 테너 ‘로베르토’, 바리톤 ‘굴리엘모’ 이렇게 세 명에다 산골 마을 사람들, 요정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령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함께한다. 푸치니는 이 작품을 공모전 이후 확장했지만 전체 러닝 타임은 여전히 약 64분에 불과하다.

구성은 두 막의 성악 음악과 오케스트라 인터메초(간주곡)로 이뤄져 있다. 두 막 모두 독일의 슈바르츠발트(검은 숲) 안에 있는 한 평화로운 공터에서 펼쳐지며 정확한 시대 배경은 명시되지 않는다.

제1막은 따뜻한 봄날 산골 마을 사람들이 안나와 로베르토의 약혼을 축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로베르토는 독일의 마곤초(현 마인츠)로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러나 안나는 불길한 꿈을 꿨다면서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간청하며 떠나지 말라고 부탁한다. 로베르토는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며 안나를 안심시키고 안나의 아버지이자 수석 산림관리인 굴리엘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로베르토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다.

관객은 로베르토의 마곤초 여행기를 무대에서 직접 보지 않는다. 대신 공연 프로그램에 인쇄되거나 낭독되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가 도시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사이렌에 매혹돼 안나를 잊고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간주곡의 첫 번째 음악인 ‘라반도노(L’Abbandono, 버림받음)‘는 안나의 장례식을 묘사한다. 그녀가 로베르토의 배신으로 인한 상심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간주곡의 두 번째 악장인 ‘라 트레젠다(La Tregenda, 마녀들의 밤)’는 제2막의 분위기를 설정한다. 이 막은 같은 숲속 공터에서 펼쳐지지만 이제는 어두운 겨울밤이다. 결혼을 앞두고 죽은 젊은 여성들의 영혼이 밤마다 돌아와 빌리가 되어 춤을 춘다. 슬픔에 잠긴 굴리엘모는 빌리들에게 딸을 배신한 자를 숲으로 유인해 복수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가 떠난 뒤 로베르토가 등장한다. 자신을 유혹한 여자에게 전 재산을 잃은 로베르토는 안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젊은 시절의 행복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냉혹한 행동에 대한 후회에 시달린다. 그러자 갑자기 빌리들이 그를 에워싸고 그들 사이에 새로 합류한 안나도 나타난다. 안나는 자신에게 한 약속을 저버린 것을 상기시키지만 로베르토의 후회는 그의 생명을 구하기에는 부족하다. 빌리들은 그를 죽음의 춤으로 유인하고 오페라는 로베르토가 안나의 발치에 쓰러져 생명을 잃으며 끝난다.

레 빌리는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들과 달리 노래뿐 아니라 춤도 중심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19세기 초 오페라에서는 초자연적 인물들을 표현하는 드라마틱한 발레 장면이 자주 등장했으며 레 빌리의 제2막은 이러한 ‘발레 블랑(ballet blanc)’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다. 발레 블랑이란 낭만주의 시대에 등장한 초현실적 여성 존재들을 다룬 발레 형식이다.

최초의 발레 블랑은 1831년 오페라 ‘로베르 르 디아블(Robert le Diable, 악마 로베르)’에 등장한다.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 오페라계에서 활동한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이 오페라에서는 순백의 튀튀(발레용 스커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등장해 테너를 괴롭히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푸치니의 레 빌리에 영감을 준 유럽의 빌리 전설은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작 ‘지젤’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지젤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아돌프 아당의 작품이다.

레 빌리는 초연 당시 큰 성공을 거뒀으나 정규 오페라 레퍼토리로는 자리 잡지 못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1908년 단 한 번 공연됐으며 이때는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단막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함께한 프로그램으로 총 여섯 차례 공연됐다.

엔리코 카루소를 포함한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레 빌리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오페라에서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유일한 발췌곡은 제2막의 테너 아리아 ‘토르나 아이 펠리치 디(Torna ai felici dì, 행복했던 날들로 돌아오라)’다. 세 인물 모두 아름다운 아리아를 가지고 있지만 로베르토의 아리아만이 콘서트나 콩쿠르에서 연주되는 유일한 곡이다.

1919년판 ‘완전 오페라 책(The Complete Opera Book)’에 실린 유명한 오페라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초상화. ⎢ Public Domain

이 악보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성악 라인은 푸치니 특유의 스타일을 명확히 보여주는데 그의 초기 걸작인 ‘라 보엠’의 그것과 비교할 만하다. 제1막의 피날레는 주인공 삼중창과 합창이 함께하는 기도 장면이다. 초연 당시 매우 인기를 끌어 세 번이나 반복 공연됐다.

레 빌리의 경쾌한 주제들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연상시킨다. 이 악보에서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두 개의 주요 무용 장면에서 함께 합창곡을 부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레 장면이 포함된 오페라에서는 무용 부분이 노래 없이 별도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합창은 무용을 위한 의도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며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와 고전 발레를 모두 완벽히 구현할 수 없는 제작진에게는 공연이 불가능한 작품이 된다.

발레와 민속 전통

이 작품이 작곡가의 다른 오페라들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무용에 대한 의존일지도 모른다. 오페라에서 발레가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이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어려움은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테너와 소프라노 모두가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나는 빌리로서 발레리나와 함께 무용 장면에 참여하고 로베르토는 ‘춤추다 죽기까지’ 긴 장면들을 버텨야 한다.

‘레 빌리’, 1906년 이탈리아 화가 바르톨로메오 줄리아노 작. 밀라노. 이 버림받은 영혼들이 옛 연인들에게 복수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Sailko / CC BY-SA 3.0

카루소의 체격은 발레 무용수의 이미지와는 거의 맞지 않으며 이 역할을 맡은 대부분의 오페라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롭게도 초연 당시 발레가 어떻게 공연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이 오페라가 188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인기를 끌었지만 세기 전환기 미국 뉴욕에선 혹평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시대 변화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레 빌리는 유럽 민속 전설에 기반한 매우 구식 작품으로 많은 미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짧다는 이유로 인해 레 빌리는 푸치니의 후기 오페라들만큼 복잡하지 않다. 주요 성악가들을 위한 곡은 총 여섯 곡(아리아 세 곡, 안나와 로베르토의 이중창 두 곡, 삼중창 하나)이며 여기에 합창곡 두 곡이 더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몇 안 되는 곡들 안에는 강력한 음악적 장치들이 활용됐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이나 개념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라이트 모티프, 복선, 그리고 반복되는 음악 구절 등이 있다. 제2막의 이중창에서는 안나가 앞서 로베르토와 나눴던 이중창에서 그의 대사를 다시 불러 그의 맹세를 그대로 돌려주며 그를 비난한다.

‘레 빌리’에서 안나 역을 맡은 로밀다 판탈레오니의 사진. 1885년, 지오반 바티스타 간치니 촬영. ⎢ Public Domain

레 빌리는 푸치니의 후기 오페라들만큼 섬세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역동적인 인물들, 강력한 중심 주제를 갖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지 찬란한 경력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다시 조명받을 만한 걸작이기도 하다. 지금도 유럽의 대형 오페라 극장들에서 간헐적으로 공연되지만 190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이후 미국 주요 오페라단에서 공연된 기록은 없다.

이번에 우리 프로덕션이 이 작품을 샌디에이고 무대에 처음으로 올리게 되면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이 잊혀진 작품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재평가가 이뤄지길 바란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