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포장재 등 화학물질 3600여종 인체서 검출” 연구

강우찬
2024년 09월 20일 오후 1:13 업데이트: 2024년 09월 20일 오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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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 비영리기관 ‘푸드 패키징 포럼’ 과학자들 주도
  • 잠재적 유해물질 1만4천종 등 인체 검출 여부 조사
  • 금지 물질도 검출돼…식품 포장재 화학물질 사용에 관심 촉구

식품 포장재와 주방용품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수천 종이 인체에서 검출됐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심장질환이나 암, 당뇨 등 성인병 증가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노출과학 및 환경역학 저널(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현재 잠재적 유해물질로 추적 대상에 오른 화학물질 약 1만4천 종 가운데 약 25%인 3601종이 인체에서 발견됐다(논문 링크).

이번 연구는 바이오모니터링 프로그램과 연구, 대사체(metabolome·생물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사물질들)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하는 메타 분석 방식으로 이뤄졌다.

바이오모니터링은 사람의 혈액, 소변 등에서 검출되는 물질을 분석해, 인체가 어떤 물질에 노출됐는지 알아보는 연구 기법이다. 미국, 한국 등 각국에서는 바이오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환경역학, 위험성평가에 사용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에서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에 활용되는 벤조페논을 ‘발암 추정 물질’로 분류했다. 벤조페논은 스티렌, 포름알데히드, 카드륨 등 식품 용기나 포장재로 사용돼 인체에서 검출되는 화학물질 중 하나다.

벤조페논 화합물은 자외선 차단제로도 사용되지만, 이 중 일부는 불임과의 관련성이 지목된 바 있다. 지난 2014년 미 국립보건원은 불임 남녀 501쌍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남성의 소변에서 벤조페논-2, 4HO-벤조페논이 높은 농도로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연구를 주도한 비르기트 게우케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연구는 환경 유해성 모니터링에 초점을 맞춘 다른 연구에서 간과됐던 화학물질들을 두드러지게 한다”며 “식품 포장재를 통해 식품에 직접 맞닿는 화학물질과 인체 건강 간 연관성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서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식품 포장재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독성에 주목한 연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게우케 박사는 식품 포장재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로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푸드 패키징 포럼(Food Packaging Forum)’의 수석 과학자다.

이번 연구에는 푸드 패키징 포럼 소속 과학자 4명을 포함해 총 9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그중 하나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연구대학 웨인 주립대 약리학과 조교수인 크리스토퍼 카소티스 박사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연구하는 실험실 책임자이기도 한 카소티소 박사는 “글로벌 시장에 등록된 화학물질과 혼합물은 35만 종 이상”이라며 “이런 물질 수십만 종은 독성학적 특성이 아직 충분히 분석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해당 물질들은 인체에 들어가면 각종 질환을 일으키거나 생식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잠재적 연관성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는 비스페놀A, 각종 금속, 프탈레이트 및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포함된다.

체액·머리카락·모유에서 살충제나 난연제 성분 검출

연구진은 다양한 집단의 체액, 머리카락, 모유 등 인체 샘플이 포함된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분석해 유해 물질 모니터링 프로그램의 추적 대상인 1만4402종 화학물질 검출 여부를 알아봤다.

또한 인체에 유해성이 높은 150여 종의 식품접촉화학물질(FCC)을 별도 선정했다. 구체적으로 살충제 25종, 중금속 23종, 난연제 20종, 휘발성유기화합물 51종과 그 외 잠재적인 위험물질들이다.

이 가운데 100여 종은 위험성이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고 40여 종은 ‘중간 정도’였다. 특히 생식기능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이 다수를 이뤘다.

연구에 참여한 제인 뮌케 푸드 패키징 포럼 상무이사는 “이번 연구는 식품접촉재료들이 여전히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번에 밝혀진 새로운 증거가 규정 개선뿐만 아니라 더 안전한 대안을 개발하는 일에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발혔다.

비스페놀A의 경우 많은 국가에서 유아용 젖병 제품에 사용이 금지됐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1년 3월 초부터 비스페놀A를 이용한 젖병 제조를 금지했으며 같은 해 6월부터는 수입과 판매도 제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이듬해 같은 규제를 시행했다. 다만, FDA는 식품 캔과 음료수 캔에 사용되는 비스페놀A는 건강에 해가 없다며 식품 접촉 접착제 및 코팅 등 용도로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연구진에 따르면 비스페놀A는 현재까지도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재료에서 여전히 검출되고 있다. 따라서 유해 화학물질을 이용한 식품 용기 제작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해야 할 이유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 공동저자이자 환경 과학 및 공학 분야 전문가인 마틴 쉐링거 스위스 연방공과대 교수는 “식품이 직접 닿는 재료에 사용된 유해 화학물질이 많은 것에 놀랐다”며 “이런 물질들은 용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가 일정 부분 인체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이러한 물질이 인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등 관련 주제에 관한 후속 연구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 이 기사는 휴 프리먼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