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한 겸허한 수용…‘하느님의 어린양’과 희생적 자세

마리 오스투(Mari Ostu)
2024년 07월 5일 오전 9:13 업데이트: 2024년 07월 5일 오전 9:13

성경 속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보고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요한복음 1:29)라고 선언했다. 기독교 예술에서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되는 운명을 지닌 예수를 묘사할 때 어린양(희생양)에 비유했다. 라틴어로 ‘하느님의 어린양’을 뜻하는 ‘아뉴스 데이(Agnus Dei)’는 기독교 미술에서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꼽히며 많은 작품에 등장했다.

‘신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양’ 산비탈레성당의 돔 천장 모자이크화의 세부 | Katarzyna Uroda/Shutterstock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산비탈레성당의 돔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 천장화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나뭇잎, 꽃, 숫양, 사슴, 과일 등이 어린양과 천사들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네 명의 천사는 어린양을 둘러싸고 있는 무화과 면류관을 받치고 있다. 이 작품은 헬레니즘・로마 양식으로 제작돼 역동적이며 화려한 색채로 고대 후기 보석 장식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양’(1635),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 퍼블릭 도메인

순교자, 수녀의 초상화와 종교화를 주로 그린 17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은 1635년에 그린 ‘하느님의 어린양’에 두 가지 예술 기법을 혼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자와 빛의 뚜렷한 대조가 특징인 명암법을 멋지게 활용해 ‘스페인의 카라바조’라는 별명을 얻은 수르바란은 극명한 대비를 인상적으로 작품에 구현했다.

‘하느님의 어린양’(1635)의 세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 퍼블릭 도메인

생후 8~12개월 된 어린양은 두 발이 밧줄로 묶인 채 순순히 누워 저항 없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양은 눈을 자연스럽게 내리깐 채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수르바란은 양의 폭신한 털과 하얀 속눈썹, 촉촉한 분홍빛 코까지 질감을 살려 섬세하게 묘사했다. 자기 운명에 순응한 어린양은 조용히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은 후 부활한 예수를 연상케 한다.

성 세실리아의 희생

‘성 세실리아의 희생’(1599), 스테파노 마데르노 | Conchi Martinez/Shutterstock

17세기 초 이탈리아 로마 최고의 조각가 중 한 명인 스테파노 마데르노(1576~1636)는 수많은 대리석 조각 작품을 남겼다. ‘성 세실리아의 희생’은 그의 역작 중 하나로 꼽힌다. 순교한 성인의 희생적 자세와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의 자세에는 뚜렷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성 세실리아는 기독교를 위해 순교한 로마의 동정녀이자 음악의 수호성인이다. 그녀는 동료 로마인들에게 세례를 해줬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그녀는 희생과 음악의 신성한 힘, 박해에 맞서 증오를 이겨내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성 세실리아의 희생’의 세부 | Sailko / CC BY 3.0

마데르노는 처형당한 세실리아의 모습을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비극적이며 감동을 전하는 대리석 조각상으로 묘사했다. 마데르노는 1599년 성 세실리아의 무덤이 개봉된 당시 몇 세기 동안 지하 묘지에 묻혀 있었으나 부패하지 않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누워있는 세실리아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상황에서도 오른손 손가락 세 개와 왼손 검지를 뻗어 삼위일체를 표시하고 있다. 얼굴을 땅에 파묻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사형 집행인이 그녀의 목 뒤편에 남긴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처형 당시 그녀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3일을 더 살아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숭고한 조각상은 이탈리아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 세실리아 성당에 비치돼 있다. 조각상 앞에는 이 작품의 제작을 의뢰한 스프론드라토 추기경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무덤에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세실리아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세실리아의 시신이 누워있던 상태를 그대로 대리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희생양

‘희생양’(1670~1684), 주세파 데 오비두스 | 퍼블릭 도메인

스페인 태생으로 포르투갈에서 활동한 주세파 데 오비두스(1630~1684)는 17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활동한 유일한 여성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에서 영감을 받아 1670년부터 1684년까지 ‘희생양’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오비두스는 수르바란에 비해 덜 섬세한 채색 기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해 구성에 입체감을 더하기보다는 구도를 평면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암시는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 속 어린양은 수르바란의 작품과 동일한 회색 석판과 검은 배경 위에 놓여있다. 양 머리에 뿔이 없고 머리 위 옅은 황금빛 후광이 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연약함을 연상케 하는 세 송이 꽃을 작품에 추가해 그림 전체에서 섬세하고 희생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희생과 운명에 대한 수용

어리고 온순한 양은 수 세기 동안 희생과 순수함, 운명에 대한 겸허한 수용을 상징해 왔다. 겸손과 온유함은 이상적 가치로 승화되며 영혼에 영생을 가져다주는 귀중한 신앙의 덕목 중 하나로 찬양된다.

마리 오스투는 미술사와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랜드 센트럴 아틀리에의 핵심 프로그램에서 고전 드로잉과 유화를 배웠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