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탄약 쥔 北 김정은에 “기술협력” 공언…어떤 기술 넘길까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09월 16일 오후 1:23 업데이트: 2023년 09월 16일 오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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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핵잠함, EMP폭탄 얹어줄 가능성도
英 타임스 “북-러 밀착, 중국에 나쁠 것 없어”

러시아가 북한에 우주기술 협력 외에도 항공기 제조 협력을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북한에 제공할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기술뿐만 아니라 신형 전투기 공급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 대가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에 필요한 포탄과 탄약 등을 러시아에 대량으로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북한의 우주개발 도울 것”…ICBM 완성기술 넘길 수도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은 보스토치나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양측 간의 무기 거래를 묻는 질문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일부 대화 내용을 소개하면서 “물론 이웃 국가로서 공개하거나 발표해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여 묘한 뒷맛을 남겼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한다”며 “(군사기술 협력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은 올해 5월과 8월 군사정찰위성 시험발사를 했지만 실패했다. 한미 안보당국과 군사전문가들은 3단 추진체 연소 문제와 함께 지구 궤도에 안착시키는 정밀유도 기술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따라서 북한이 가장 관심을 가질 기술은 단순한 우주발사체 기술이 아니라 다량의 인공위성 탑재 및 궤도 안착을 가능케 하는 정밀유도기술이라는 지적이 많다.

러시아는 1957년 5월 최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같은 해 10월에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후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1960년대 말부터 훌쩍 앞섰지만 그렇다고 러시아의 우주기술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러시아는 2017년 6월에는 한 번에 73개의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정확하게 안착시켰다. 이 역량은 ICBM 기술과 직결된다.

1개의 우주 로켓에 수십 개의 인공위성을 탑재해 정확한 위치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로켓 엔진의 추력이 강력하다는 의미다. 또한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기술은 ICBM에 여러 개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목표지점에서 차례대로 발사하는 MaRV(조정가능재돌입체) 기술로 전용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기술을 습득하면 ‘화성-17형’과 ‘화성-18형’ 같은 대형 ICBM에 10개 이상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다 러시아가 만약 재돌입체(RV) 기술도 제공하면 북한 ICBM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수호이 공장 찾은 김정은…러 부총리 “항공산업 생산 협력”

김정은은 15일에는 하바롭스크 소재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수호이 공장을 시찰했다.

이 자리에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부총리 겸 산업통상부 장관과 동행한 김정은은 공장에서 러시아 주력 전투기 Su-35와 2028년까지 총 76대를 실전 배치할 예정인 스텔스 전투기 Su-57, 신형 여객기 SJ-100의 조립 공정을 견학했다. Su-35 전투기 시험 비행을 참관하고 조종석에 앉아보기도 했다.

만투로프 장관은 시찰 도중 전투기를 포함한 항공기 제조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며 “러시아는 항공기(전투기) 제조를 비롯한 기타 산업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전 지도자 김정일이 생전인 2002년 8월과 2011년 8월에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김정일은 김정은과 비슷한 시찰 일정을 소화한 뒤 러시아 측에 Su-27 전투기 판매를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하지만 현재는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포탄과 탄약, 장비를 북한이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김정은의 입장은 다르다.

이 때문에 Su-30 또는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전투기 판매 요청을 하고,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에 생산 시설을 짓고 위탁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김정은 마지막 일정은…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 함대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 마지막 날인15일 둘러본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북방 함대와 함께 러시아 해군 최강 전력이다. 주력은 22척의 잠수함이다. 그중 14척이 핵추진 잠수함이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16발을 탑재한 최신형 보레이급이 4척, 초대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24발을 장착한 오스카급 5척, 대형어뢰발사관을 통해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쏘는 아쿨라급 3척 등이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 6일 진수식을 가진 ‘김군옥 영웅’함이 건조 때 참고한 델타급 잠수함도 1척 있다. 이 잠수함은 SLBM 14발을 탑재할 수 있다.

김정은이 태평양 함대를 둘러볼 때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을 견학한다면 협력 성사 여부를 떠나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제공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서도 건조한 지 42년이 되는 ‘델타Ⅲ’급 잠수함은 러시아 해군에게는 구식이지만 북한에겐 엄청난 전략자산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1952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노벰버’급의 개발을 시작, 1959년 취역시켰다. 이후 64년 동안 핵추진 잠수함을 제조한 노하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일체형 소형모듈화원전(SMR)인 ‘스마트 원전’도 구소련 핵잠수함 기술을 응용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추진 잠수함 개발·보유국은 기술을 해외에 준 적이 없다. 2021년 9월 미국이 안보동맹 오커스(AUKUS)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주기로 한 게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 잠수함이나 원자로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북한이 신포나 함흥 등을 태평양 함대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러시아군 핵전력을 한반도에 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추진 잠수함, EMP 폭탄 등의 기술 협력할 수도

전자기파(EMP) 폭탄의 고도화·소형화도 북한이 노릴 수 있다. 북한은 2004년 이미 러시아로부터 EMP 폭탄 기술을 얻었다. 이는 2014년 7월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북한은 지난 3월 전술탄도미사일을 지상 800m 상공에서 폭발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폭발 고도를 30km 이상으로 높이면 EMP 발생을 통해 한미 연합군은 물론 한반도의 전력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다.

기술협력이나 무기거래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협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러시아 무기를 북한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잃은 전력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원자재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군수공장 가동률 자체가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평시 군수공장 가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에다 기술과 자재를 제공해 전술용 탄도미사일과 구형 자주포, 야포, 포탄 생산 등을 위탁 생산하는 위험한 거래를 비밀리에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英 타임스 “푸틴-김정은 밀착, 중국엔 나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은 물론 러시아와도 연대했던 중국은 이번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에 침묵하고 있다. 다만 오는 1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러시아 방문에서 ‘어떤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많다.

국내 언론은 “이번 중러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러시아 측이 중국에 러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관련 후속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왕이 부장은 방러 기간 중 푸틴 대통령을 예방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편 영국 일간 ‘타임스’는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중국에 유리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신문은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에 대한 중국의 침묵이 이해하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중국의 목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입장 모두를 이해하는 중국 공산당이 보기에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는 걸 선호했겠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너무 심하게 패배하도록 놔둘 수 없게 됐다. 김정은이 그런 결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일”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이 구소련제 무기를 대량 제공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막는 것도 중국에게는 훨씬 유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