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 “연주의 ‘화려함’을 찾는 것보다… 내가 느낀 대로 음악을 해야”

이연재
2022년 09월 24일 오후 8:38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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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테크닉적으로 100% 완벽하게 될 때까지 연습한 적이 있어요. 음정 한 번 안 틀리고 깨끗하게 연주했었거든요. 근데 음악(소리)이 차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차지 않은 음악을 연주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경희대학교 교수 양고운은 섬세한 연주와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주자다. 지난 20일 경희대학교 교수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통해 4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접한 그녀는 워낙 어려서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한 길만 걸었다.

“아버지는 ‘돌체’라는 (음악) 카페에 들어가시면 점심을 굶으셨고, 음악을 다 듣고 나오실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딸을 낳으면 음악을 시키려고 (학교도) 예고와 서울음대를 보내야겠다고 정해 놓으셨죠. 지금도 아버지는 원하는 대로 커줘서 고맙다고 얘기하실 때가 있어요.”

양고운은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 재학 중 도미,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뮌헨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베를린 막스 로스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와 피가니니 콩쿠르, 리피쳐 콩쿠르, 티보바가 콩쿠르 등 국제 콩쿠르 입상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연주자이자 교수로서 그는 항상 ‘성실한 연습’을 중요시한다.

성실하게 꾸준히 연습해서 최대한 편안하고 따뜻한 소리를 전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바이올린을 제임스 버스웰(James Buswell)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그 선생님이 제 음악을 많이 열어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이 좀 지루하니 않냐’고 항상 질문을 했었는데  선생님은 ‘너의 음악은 보어링(Boring, 지루한)한 게 아니고 오히려 포에틱(poetic, 시적인)하다’라고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일부러 바꾸려고 하지 말아라. 네가 가진 음악에 립스틱 바르고 화장하고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네가 느낀 대로 하면 네 음악이 나온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왜냐면 저는 음악에 ‘끼’를 좀 내보고 싶어서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거든요. 근데 그게 억지로 안 되더라고요. 근데 그것을 선생님이 잘 끌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는 풍성하고 따뜻한 소리, 예쁜 소리를 내기 위해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나탄 밀스타인’, ‘헬릭 셰링’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모두 작곡가의 의도와 감정을 잘 표현해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어렸을 때는 그냥 무작정 들었어요. 아버지가 매일 전축을 틀어 놓으셔서 제가 연주하는 곡들 대부분을 바이올린 배우기 전부터 귀로 외울 정도였거든요. 음악을 공부하고부터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목표를 가지고 찾아서 들었어요. 노력을 많이 했죠”라고 말했다.

여러 작곡가 중 그는 특히 브람스(1833-1897)라는 작곡가를 사랑한다. “저는 브람스를 제일 좋아해요. 브람스 곡을 잘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연습도 많이 했어요.  이런 욕심은 아직도 있어서 저번 4월에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이중협주곡)를 이강호 교수와 함께 연주했어요”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브람스 음악은 로맨틱해요. 무언가에 굉장히 동경한다는 그런 느낌인데, 여기까지만 가도 가슴이 벅찬데 브람스는 거기서 항상 조금 더 가는 것 같아요. 감정이 벅차 올라서 이미 너무 좋은데 거기서 조금 더 가거든요.”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양 교수는 지난 8월 토너스 콰르텟 연주회를 가졌다. 20세기 실내악의 대표적인 걸작 쇼스타코비치(1906-1975) <String Quartet No. 8 in c minor, Op. 110>을 선보였다.

“‘이 곡은 하루라도 젊었을 때 빨리 했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육체적으로 도전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멋있게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반응은 좋았는데, 가장 아쉬웠어요.”

현재 그는 실내악 앙상블 ‘토너스 트리오(바이올린 양고운, 첼로 이강호, 피아노 주희성)’ 공연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학교에서 10월 14일 열릴 이번 공연에는 피아졸라(1921-1992) 사계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학생들 지도와 많은 연주 일정 속에서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만 깊이 있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그는 음악을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린 주법 중 ‘슬러 스타카토(Slur Staccato)’라는 테크닉이 있는데 중학교 때도 이것 때문에 콩쿠르에서 일등을 못 했어요. 정말 안됐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언젠간 되겠지’ 하면서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돼요. ‘긍정적인 마인드로 계속해서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정말 안 되는 게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행복하게 하려면 긍정적인 마인드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거예요.”

토너스 트리오에 대해, 자신의 이름을 딴 델리카 앙상블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을 보면서 그가 강조했던 ‘성실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라는 표현을 되새겨본다. 주위에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지나치다 싶게 성실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한 명 떠올려보라. 양고운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같이 했는데, 사실 저는 피아노로 예원학교를 가고 싶었어요. 피아노가 너무 재밌었거든요. 4학년 때인가 콩쿠르에 나갔는데 피아노를 치는 것을 아버지가 보시더니 너는 바이올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피아노를 치기에는 제 손이 좀 작고 얇아서 버거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6학년 때까지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죠. 근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는 제 손이 안성맞춤이거든요. 너무 크고 두꺼우면 하이포지션에서 (연주하기가) 되게 힘들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바이올린을 더 잘했던 것 같아요.”

– 바이올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바이올린만 낼 수 있는 간들간들한 소리가 있어요. 성악으로 치면 소프라노 같은 높은음은 바이올린만 흉내 낼 수 있거든요. 다른 악기에는 없는 간들간들한 소리가 너무 예쁘고 바이올린은 비브라토(Vibrato, 음높이를 일정하게 진동시킴으로써 음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와 활이 같이 가는데 그때는 정말 노래하는 것 같거든요.”

– 유학이 음악인으로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나요.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끼가 있잖아요. 김남윤 선생님도 그러시고 김 민 선생님도 항상 말씀하는 것이 ‘너는 좀 끼가 부족하다’였거든요.  저는 학교, 집, 학교, 연습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정형화된 삶에서 승승장구하다 보니까 느끼는 감정들도 좀 작지 않았나 싶어요. 보케블러리가 좀 작은 거죠. 인생을 살면서 굉장히 단순하게 살다 보니까 음악이 좀 단순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그런데 유학을 가니 일단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것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공항에서 엄마랑 한 삼 년을 넘게 항상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눈물바다였죠. 혼자 살면서 외로워도 보고 문제에도 부딪쳐보고 그러면서 성숙된 것 같아요. 그리고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이 음악을 억지로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는 분들이 아니었어요. 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해석해서 저로 하여금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표현하게 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유학은 인생에 있어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 자신은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일단 성실해요. 열심히 노력하고 또 부지런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려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소리를 내려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언제쯤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냐’고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10년이 지나면 낼 수 있다’고 해서 그 10년을 손꼽으면서 기다릴 정도였거든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지금도 항상 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 사용하고 있는 악기를 소개해주세요.

피가니니 입상했을 때부터 소리가 좋다고 ‘악기는 무얼 사용하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항상 있었어요.”
“‘토노니’라는 악기인데요. 1700년대에 만든 오래된 악기예요. 제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 지나가다 바이올린 샵을 들렀는데 이 악기를 보여주더라고요. 소리가 너무 좋아서 만지작거리다가 못 사고 다음 날 가서 연주해보고 또 다음 날 가서 연주해보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뻔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토노니 놓쳤던 게 너무 후회됐었는데 미국 보스턴 샵에 토노니가 들어왔다고 하길래 바로 달려갔죠. 그전에는 갈리아노를 썼는데 토노니가 음색이 조금 더 밝아요. 그리고 소리가 매끈하고 윤기가 있어요. 연주를 하면 선명하게 소리가 나거든요.”

– 소리에 있어서 영감을 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면.

“젊었을 때는 ‘음악가 중 누굴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라고 답했어요. 소리가 굉장히 따뜻해서 ‘나도 저렇게 풍성하고 따뜻한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의 소리가 화려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서 화려한 소리를 또 찾았어요. 화려하면서 견고한 소리를 내는 ‘나탄 밀스타인’이 좋았고요. 또 ‘헬릭 셰링’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했어요. 라디오를 듣다가 ‘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면 연주가 끝나면 꼭 ‘헬릭 세링 연주였습니다’ 이런 멘트가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 세 분의 연주를 항상 듣고 컸던 것 같아요.”

– 연주자이자 교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경희대 학생들을 보면 자신감이 없는 애들이 많아요. 일학년에 들어와서 ‘선생님 이게 안 돼요’ 그러면 저는 ‘오늘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매일매일 하루도 안 빼놓고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면 4학년 때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속 안 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금 잘 되다가 또 막 안 되다가 조금 잘 되고, 이렇게 학습곡선은 계단식으로 가는데 이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한테는 너무 힘든 거죠. 음악이 너무 괴로울 수 있는 거예요. 음악이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연주하려면 긍정적인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 연주를 잘하려면 무엇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클래식 음악은 다방면에 여러 곡을 접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음악에는 상식적인 표현 같은 것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비엔나 왈츠의 ‘쿵짝짝’은 빈필 아니면 연주할 수 없어’ 이런 말이 있어요. 저는 그게 너무 궁금해서 도대체 ‘쿵짝짝’이 뭐길래 그러나 하고 빈필 연주를 여러 번 들었어요. 근데 달라요. 하지만 우리는 빈필에 들어가서 연주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들어서 여러 해 걸쳐 실력이 쌓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흉내 낼 수 없는 지점이 오더라구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 프로젝트가 있다면.

“델리카 앙상블을 제자들과 함께 결성해서 창단 연주회를 했는데, 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멤버들을 잘 끌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내년에도 연주회를 할 예정이고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꾸려가면 좋을까’에 대해 새로운 것이 또 하나 생긴 거죠. 토너스 트리오와 콰르텟은 당연히 하는 거고요.”

– 특별히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 있다면.

“저는 다방면으로 많이 연주한 편입니다. 다만 현대곡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많이 안 했어요. 그쪽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고요. 나이가 들면서 옛날과 다르게 접근하는 면이 있어서 브람스나 슈만, 모차르트, 베토벤 작품을 한 번 더 연주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안 해 본 프렌치 레퍼토리가 있는데 도전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