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하노이 회담 후 ‘자력갱생’으로 정책 전환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란 기대는 버려야
北 경제적 자급자족 불가능…‘지식화’로 사상 무장 무력화 필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평화와 통합·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6월 9일, (재)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남북관계 변화와 과제’에서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추진해온 대북정책은 불분명하고 메뉴가 단순해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병연 교수는 남북관계의 과제로 단기적으로는 ‘비핵화’, 장기적으로는 ‘통일 혹은 통합’을 꼽으며 ‘경협’ 등 남북 협력이 단기와 장기를 잇는 다리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핵화 성공 여부는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비핵화 성공 시 경협과 통합의 남북 관계가 가능하겠지만, 비핵화가 실패하면 대북 군사적 억지력 강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우선 2018년과 2022년을 비교하며 달라진 남북관계와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정책 노선이 과거와 달라졌다”며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핵 보유 의지는 일관됐다”며 “방식만 바뀌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김정은이 그간 협상에 나온 건 핵 포기보다는 핵을 일부라도 보유하고자 하는 전술적 차원으로 보인다”며 “특히 하노이 회담에서 일부 핵을 포기하고 제재를 전부 풀게 해서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노이 회담 이후 이전과 같은 얼치기 전략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자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바꾸었다”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자력갱생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최근 코로나 확산 사태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제안한 방역 물품 지원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내부적으로 북한 주민과 관료들에게 외부 지원 없이 자체적인 힘으로 경제난과 여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대외적으로도 이러한 기조를 선전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전환한 또 다른 이유로 “미국에 대해서도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 핵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시그널과 함께 오미크론 사태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핵 군축 회담은 할 수 있지만 핵 포기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미국이 새로운 제안을 가지고 협상하기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사상 투쟁을 강조한다고 짚었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관련해선 미·중 대립의 격화를 언급했다. 김 교수는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가 대립하는 등 국제질서의 복잡성이 증가했다”며 “미·중 대립, 미·러 대립은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버틸 수 있는 경제적·외교적 공간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해석을 내놨다. 한 예로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혀 트리거 조항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7년 12월, 안보리는 북한의 ‘화성-15형’ ICBM 발사에 대해 대북 원유 공급 상한을 축소하는 제재를 만장일치로 결의하면서 이른바 ‘유류 트리거(방아쇠)’ 조항을 마련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를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하며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집중도가 현저히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라진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설명을 마친 김 교수는 구체적인 대북 정책으로 “북한의 자력갱생 역량을 약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북한의 자력갱생에 대해 “경제적 자급자족과 사상 무장으로 버티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하며 대응 방안으로 ‘제재’와 ‘지식화’를 제시했다.
대북 제재를 지속하는 한편 경제난, 코로나 사태 등 북한 주민이 고통받는 근원은 북한의 핵 개발 때문이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과 북한 전문가들에게 알리는 ‘지식화’로 사상 무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북한의 자급자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그 근거로 “북한이 제재받기 이전인 2014년 북한의 무역 개방도는 52%로, 이미 국제질서에 편입됐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통해 공급망을 늘려온 북한이 갑자기 자급자족으로 전환하면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북한이 자급자족을 고집할수록 경제적 회복력은 떨어지고 코로나 상황이 풀려도 북한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협력 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중국 정부의 관심은 북한의 연명이지 북한의 경제 발전은 아니다”라며 “핵을 가진 북한이 경제까지 발전하는 것을 중국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북정책에 대해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변화에 대응해 단계적으로 쓸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를 패키지로 엮는 정책적 보완성이 요구된다”며 북한 비핵화와 남북의 상생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대북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재는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를 시작하면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의 미래 경제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방법도 설명해주면서 ‘핵’이 그에 대한 방해 요소라는 것을 알려주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비핵화를 할 경우 어떤 식으로 체제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도 있어야 한다. 억지력 강화와 관련해선 북한이 핵을 보유하더라도 한미 군사동맹이 더 강화되면 군사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속해서 보여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중국이 한국의 요구대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은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 문제는 미·중 관계에 달렸기 때문에 한미동맹 강화에 더 주력하고, 중국에 대해선 ‘설득’보다는 우리 입장을 정확히 ‘설명’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연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주의 체제’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북한 경제 전문가다. 영국 에식스대, 서강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가 국가 발전을 위한 장기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신설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전략원 원장,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학술원상(2018), 서울대 학술연구상(2018), 니어재단 연구상(2019), 한국경제학회 청람상(2005), 영국 경제사학회 T.S. Ashton Prize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