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총련에 한국과 교류 금지…통일 관련 용어도 엄금

지금껏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며 한국을 ‘남조선’으로 호칭해 온 북한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민족 자주 통일’ 노선을 포기하는 행보를 걸어온 가운데, 최근에는 재일(在日) 조선인 단체인 조선총련에 소위 ‘통일 운동가’ 등 한국의 좌익 인사들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한국 관련 언급을 엄금(嚴禁)하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내 한인 단체가 최근 입수한 ‘대한(對韓) 노선 전환 집행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조선총련 내부 문건에 따르면 동(同) 단체는 지난해 12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비롯해 올해 1월 소집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회 회의 등에서 결정된 대남(對南) 정책 노선 변경과 관련된 방침에 따라 일본 각지의 조선총련 산하 각 기관 또는 단체와 구성원들에게 북한 당국의 지시 내용을 전달했다.
이 문서는 최근 한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북한의 노선과 동일한 선상에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대한 정책 전환 방침에 기초해 각 기관과 단체, 사업소에서는 ‘동족 관계로서의 북남조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등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는 활동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민국의 소위 민주적 인사들과의 사업, 민족 교육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며 ‘우리 학교’를 지원하고자 하는 단체와 인물과의 관계를 완전히 중단하고, ‘조국통일’ ‘민족 대단결’을 지향하는 대한 정치선전 사업 일체를 중단한다”는 조선총련의 방침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한국과의 양자 관계를 재설정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가 김여정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2023년 7월 담화의 내용이다.
해당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북한 내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기존의 명칭인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과거에도 북한 내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북한 당국이 내는 공식 성명 또는 담화에서 한국을 지칭해 ‘대한민국’이라고 명확히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지난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3국간 안보 협력 강화 방침에 합의한 데 대해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 깡패 우두머리들이 모여 앉아 3자 사이의 각종 합동군사연습을 정기화한다는 것을 공표하고 그 실행에 착수했다”며 “미국과 대한민국 군부 깡패들의 분주한 군사적 움직임과 빈번히 행해지는 확대된 각이(各異)한 군사연습들은 놈들의 반(反)공화국 침략 기도의 여지없는 폭로”라는 표현으로 큰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그간 북한은 한국을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인식하며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관계를 ‘상호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대남(對南) 정책 노선 변경은 한국을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의 대상이 아닌 상호 적대적인 국가 간의 관계로 다시 설정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올해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회 회의 결정 제13호는 “오늘 조선반도에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며 “근 8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과는 언제 가도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조선반도에 통제 불능의 위기 상황을 항시적으로 지속시키며 정권 붕괴와 흡수 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대한민국을 더 이상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라고 규정했다.
이번에 입수된 조선총련 문건은 일부 용어 사용을 금지한 대목도 눈에 띈다. 문건에서는 조선총련 산하 기관 또는 단체가 발행하는 각종 학습 자료와 정보지 등 문서에서 북한 당국의 대한 정책 노선 변경 방침에 부합하지 않는 ‘남조선’ ‘남반부’ ‘북조선’ ‘북반부’ ‘하나의 민족’ ‘한 겨레’ ‘남측 동포’ ‘통일’ ‘자주통일’ ‘평화통일’ ‘민주통일’ ‘우리 민족끼리’ ‘민족 대단결’ ‘삼천리 금수강산’ ‘삼천리’ ‘8천만 동포’ 등의 표현 일체를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에 따라 조선학교 등 조선총련 관계 교육기관에서는 기존의 교과서 등에서 북한 당국이 금지한 표현을 모두 삭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북한 현지에서는 새로운 대남 정책 노선에 따라 ‘통일’ 관련 기념물과 상징 등에 대한 철거 내지 폐기, 변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평양 낙랑구역에 위치하며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 시대에 세워진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북한의 국가 ‘애국가’도 지난 4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로 정식 명칭이 변경됐으며 가사 중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부분 중 ‘통일’을 상징하는 ‘삼천리’ 부분이 ‘이 세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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