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매체(미디어)가 곧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문장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가 단순 전달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매체는 편지, 전보, 이메일, 문자메시지(SMS) 등으로 발전해 왔고 각 매체는 저마다 다른 특성과 성격을 지닌다.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편지는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편지를 쓸 때 대부분 사람은 일반 대화를 나눌 때와 다른 자세로 임한다. 대화를 나눌 때는 논리 전개 방식과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지만, 편지는 문자로 기록되기에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편지는 타인과 단절된 공간과 시간에서 작성되기에 고찰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편지를 쓰는 것은 헌신과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러한 노력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새로운 문물에 익숙해져 집중력이 약해지고, 짧은 글을 읽는 데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기다림의 미덕을 일깨워주는 편지보다는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에 더 익숙해졌다.
빠르고 간편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경제적인 방식의 소통이 퍼지면서 여러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깊은 고민과 철학,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대화 방식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 더불어 전통적인 대화와 문학의 예술성이 사라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편지는 현대 소통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아름다운 편지
18세기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영국 낭만주의 전성기의 3대 시인 중 한 명이다. 그가 사랑하는 이와 주고받은 편지는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편지로 꼽힌다.
키츠는 1818년, 사랑하는 여인 패니 브론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1821년 키츠가 폐결핵으로 인해 25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 그들의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났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중 상당수는 후대에 전해져 출판됐다.
키츠가 패니에게 보낸 편지 중 유명한 것은 1819년 7월 1일에 보낸 편지다. 그는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당신에 대한 나의 헌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밝은 것보다 더 밝은 단어, 공정한 것보다 더 공정한 단어를 원한다. 우리가 나비가 되어 어느 여름날 사흘 만이라도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함께한 3일은 50년의 평범한 삶보다 더 큰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라고 전했다.
1819년에 쓴 또 다른 편지에서 그는 “당신의 편지는 내 삶의 원동력이라 매주 나에게 편지를 쓰길 바란다. 내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라는 아름다운 단어와 표현으로 사랑을 전했다.
이처럼 편지는 평소 대화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이자 언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주는 매체임을 알 수 있다.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
1903년 독일의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시를 쓰는 법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한 시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신인은 독일어권 문학가 중 최고로 평가받는 인물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였다. 릴케는 답장을 보내며 시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에 대한 조언도 함께 실어 보냈다.
릴케는 1904년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을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랑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궁극적인 과제이자 최후의 시험이고 증명이다. 다른 모든 작업은 단지 준비에 불과한 일일 것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그는 고독과 슬픔이 영혼과 자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에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당신은 아직 너무 젊고 삶의 시작 단계에 있다. 그러니 마음속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잠긴 문을 풀듯,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듯 그 문제 자체를 사랑하려 노력하길 바란다. 친애하는 카푸스여, 지금 당장 찾을 수 없는 답을 찾으려 하지 마라. 왜냐면 당신은 그 답을 아직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질문과 문제를 살아가라. 먼 미래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답을 찾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릴케는 친절하고 상냥한 언어로 삶과 걱정에 고뇌하는 청춘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편지에 실어 보냈다.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
판타지 소설의 개척자라 불리는 영국의 작가이자 언어학자 J.R.R 톨킨(1892~1973) 또한 많은 편지를 남긴 인물 중 하나다. 그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으로 복무 중이던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보낸 편지는 암울한 시기에 변함없는 희망을 보여준 예로 꼽힌다.
톨킨은 당시 인류의 고통에 대해 고뇌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직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은 악이 엄청난 힘과 영원한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건 헛된 일이라는 점이다. 항상 예상치 못한 선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한다”라며 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편지는 전쟁의 참담함 속에서 고뇌하던 아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이어 톨킨은 세상의 어둠에 대한 성찰에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그는 “너는 슬픔과 정신적 고통 시기의 나에게 너무나 특별한 선물이었다. 네가 태어나자마자 너에 대한 사랑은 즉시 펼쳐져 큰 위로가 됐다. 예언된 듯 끝없는 사랑의 확신에 나는 항상 위로받는다. 우리는 머지않아 건강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이며, 이 생을 넘어 지속될 특별한 유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라며 아버지로서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편지에 담았다.
고뇌가 묻어나는 언어
편지에는 많은 의도가 담긴 언어가 쓰인다. 호주의 작가 에드위나 프레스턴은 편지에 대해 “편지는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것을 임시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덧붙여 적은 삶의 기록이다. 실시간으로 종이에 자아를 풀어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행위의 배경에서 우리는 의식에 스며드는 사소한 것조차 종종 활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시간과 생각을 필요로 하기에 삶이 투영되는 것이다.
또한 편지는 우리 일상의 연대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일기처럼 하루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편지는 읽는 이를 고려해 받는 사람이 기쁨을 얻도록 쓰인다. 편지를 쓰는 과정에는 어떤 생각을 전할지, 수신인이 누군지 등에 대한 많은 고민과 결정이 개입되기에 편지는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 모든 과정과 결정이 상대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는 점이다. 편지는 한 사람이 다른 이를 배려하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편지는 디지털화된 소통방식과 다르게 소중하고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통의 가치와 진실한 감정, 언어를 담는 수단인 편지는 그 자체로도 보존될 가치가 충분하다.
말레나 피게는 2021년 미들베리 대학에서 이탈리아어 문학 석사를 취득했고, 2020년 댈러스 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와 영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현재 이탈리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