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과 예술에 대한 경외심…바토리 작품 속 머큐리 & 철학

에릭 베스(Eric Bess)
2023년 09월 07일 오후 2:27 업데이트: 2024년 02월 05일 오전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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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진리

2500년 전,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는 시인들이 창작한 작품의 내용이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 시민들을 환상으로 교란한다고 주장하며 유토피아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인들을 검열하고 올바른 주제를 노래하도록 이끌었다.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기원전 800년~기원전 750년 추정)의 작품 속 신처럼 신을 희화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신들을 품위와 명예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하도록 해 신을 귀감의 대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소크라테스가 검열한 것은 시뿐만이 아니다. 음악 또한 서정적이거나 감정을 주제로 다루는 것을 제한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사기를 돋우는 가사와 음률의 곡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실천적 철학을 주도한 프리드리히 니체(1844년~1900년)는 소크라테스를 강렬히 비판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향해 사상과 감정을 검열해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한 인물이라 비판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예술가에 대해 운명의 고난을 견뎌내 자기 스스로를 예술로 승화해 내야 한다며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통해 초월적 가치의 붕괴를 시사했다.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 두 사상가는 예술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가졌다. 소크라테스는 예술적 진리는 인간의 경험을 초월해 신성한 이성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니체는 예술적 진리가 인간의 경험과 인간 간의 관계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반된 관점은 ‘아름다움’이 기준이 있는 객관적 개념인지 주관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층차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면서 그것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상대적인 것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철학의 왕관

‘머큐리가 예술의 ‘어머니’ 철학에게 왕관을 씌우다’(1747), 폼페오 바토니. 캔버스에 유화, 120×89.5센티미터 | 러시아 국립 예르미타시 박물관

이탈리아의 화가 폼페오 바토니(1708년~1787년)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머큐리가 예술의 어머니 ‘철학’에게 왕관을 씌우다’(1747)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날개 달린 투구를 쓰고 노란 옷을 입은 전령의 신 머큐리가 화면의 오른쪽으로 손을 뻗고 있어 우리의 시선을 끈다. 화면 오른쪽의 천사는 ‘철학’이라는 여인에게 월계잎으로 만든 왕관을 씌우려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철학이다. 수수한 옷차림이지만, 머리에 두르고 있는 황금빛 왕관과 손에 쥔 홀(笏/왕족의 상징물)을 통해 그녀가 왕족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한 손에는 책을 쥐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무언가를 받을 준비가 된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철학의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아이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머큐리가 예술의 ‘어머니’ 철학에게 왕관을 씌우다’(1747)의 세부, 폼페오 바토니. 캔버스에 유화, 120×89.5센티미터 | 러시아 국립 예르미타시 박물관

아이는 붓, 석상, 나침반, 리라 등 예술적 상징물들 사이에 앉아있다. 화면 어두운 구석에 자리한 아이는 횃불을 들어 그 빛으로 어두운 곳을 밝힌다.

철학적 질문에 답하다

머큐리는 그리스 신들의 전령(傳令)이다.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카두세우스)는 태양과 아름다움, 시, 음악의 신 아폴론이 리라를 발명한 후 그에게 준 것이다. 카두세우스를 통해 머큐리는 아폴론과 이어져 예술, 아름다움과 연관을 가진다.

머큐리는 천사에게 철학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라고 지시한다. 왕관은 신이 내리는 인정(認定)과 보상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철학은 존경과 놀라움의 눈빛으로 머큐리를 올려다보며 신성을 온전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계관은 그녀가 이미 쓰고 있는 왕관 위에 덧씌워진다. 이는 그녀에게 지상의 권한과 예술의 신성한 권한을 함께 부여함을 나타낸다.

철학의 손에 들려있는 책은 소크라테스의 대변인이었던 플라톤의 책이다. 이를 통해 바토니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옳다는 쪽에 힘을 실어준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신성에 기준을 둔 예술이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과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철학이 내밀고 있는 한 손은 머큐리로부터 신성한 메시지를 받는 동시에 철학적 관념에서 예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철학은 단순한 학문이나 관념이 아닌 예술의 신성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전달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의 발치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아이는 어둠에서 벗어나 신성한 진리의 빛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신성한 메시지를 전하다

바토니는 예술이 인간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신성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여겼다. 인간의 경험이 아닌 신성한 것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며, 신에게서 아름다움과 진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철학이 그 경로라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창작한 내용을 배척했기에 예술을 검열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분별력 없이는 지혜를 실천할 수 없다. 즉, 우리는 무엇을 판단할 때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판단을 위해서는 적정한 검열이 필수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예술은 신성을 이해하고 진리를 추구해야만 완성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예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신성을 저해하는 이들에게 틀렸다고 말하며 아름다움과 예술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좇는 시인들을 독려하며 철학과 예술의 발전에 여러 기여를 했다.

바토니는 소크라테스가 지키려 했던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신성과 예술에 대한 존경심을 온전히 이 작품 속에 녹여냈다.

 

에릭 베스는 시각 예술 박사 과정 연구소(IDSVA)의 박사 과정 후보자이자 뉴욕주 미들타운에 있는 페이티안 대학의 조교수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