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의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가 그린 그의 가족 초상화들은 많은 수의 작품이 존재하는 동시에 포괄적인 주제와 대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초상화들은 18세기의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게인즈버러의 예술세계
게인즈버러는 초상화와 풍경화를 주로 그린 화가입니다. 활동 초기에 그는 영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그리며 자신의 작품활동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풍경화는 대중들에게 진지한 예술로 인식되지 않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그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풍경화를 잠시 제쳐 두고 초상화를 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로코코 풍의 미적 감각에 정교한 자연주의 기법을 결합해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려내는 그의 실력은 금세 영국 전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많은 부유층과 귀족에게 의뢰받아 초상화를 그리며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게인즈버러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함에 절망했습니다.
1760년, 게인즈버러는 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초상화가 지겹다. 내 비올라를 챙겨 들고 어디 조용하고 편안한 시골로 내려가 풍경화나 그리며 인생의 자투리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렇듯 그는 초상화를 의뢰하는 후원자들이 예술의 참된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초상화에 열광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고 비통해했습니다.
빛이 되어준 가족, 그리고 그들의 초상화
대중에게 외면받는 풍경화에 대한 열망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바로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의뢰받아 초상화를 그릴 때 느낀 피로감은 가족을 모델로 해 붓을 들 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인즈버러는 그의 아내와 두 딸, 조카와 처남, 그리고 그의 하인과 애완동물까지도 모델로 삼아 엄청난 수의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가족을 그린 작품들은 게인즈버러가 예술가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의뢰인이나 후원자의 요구에 맞춰 제약이 있는 그림이 아니기에 그는 마음껏 그림의 구성, 기술 등을 실험하며 예술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성장하다
이후 그는 초상화의 모델을 풍경화에 결합하는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대부분 배경을 단순화해 그리거나 실내를 배경으로 그려졌지만 정원이나 숲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를 다수 그려내며 풍경화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초상화에 아름답게 녹여냈습니다.
미술사학자 마이클 로젠탈은 게인즈버러에 대해 “18세기 당시 가장 기술적으로 능숙한 동시에 가장 실험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인물과 풍경 사이에 비율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초상화를 그려낸 게인즈버러. 그의 예술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진정한 예술에 대한 추구와 순수한 열정을 바탕으로 한 단계 성장해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