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22번째 건국원칙에서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법으로 국민을 다스려야지 사람의 주관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고, 감정이 있으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법은 감정 개입 없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즉 사람이 행동할 때 따라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체계화한 것이다. 따라서 법은 국가가 국민을 다스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정’을 담보할 수 있다.
또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권리를 누릴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는 신분·지위·인종·계급에 상관없이 법으로 보호하고,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역시 신분·지위·인종·계급에 관계없이 법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
법과 자유의 관계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법의 보호가 없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혼란의 ‘정글’이 되기 때문이다.
법이 보장하는 ‘자유’는 양면성을 지닌다. 전체 구성원이 자유를 법으로 보장받는다는 것은 각자의 자유를 보장받는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를 잃어야 함을 뜻한다. 즉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와 제약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과 자유의 관계다.
법과 도덕의 관계
역사적으로 볼 때 법치는 인류 사회가 어느 정도 발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상고시대에는 왕정이었고, 왕은 도덕심이 매우 높은 성인이었다. 따라서 법에 의지해 백성을 다스릴 필요가 없었고, 도덕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도치(道治) 혹은 덕치(德治)로 선정을 베풀 수 있었다.
중국의 고서 ‘도덕경(道德經)’을 보면, “도(道)를 잃으면 덕(德)이 나타나고, 덕을 잃으면 인(仁)이 나타나며, 인을 잃으면 의(義)가 나타나고, 의를 잃으면 예(禮)가 나타난다”고 했다. 따라서 상고시대에는 도덕으로 세상을 다스렸지만, 도덕이 쇠한 후에는 인으로, 인이 쇠퇴하면 의로, 의로도 유지할 수 없는 사회는 예로써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예가 법과 규범으로 다스리는 법치에 해당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매우 비슷한 이론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선(善)을 갖춘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강조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강조했다. 따라서 사제 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법치를 차선의 정체체제로 내세운 것이다. 즉 도덕을 갖춘 사람이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지만 도덕으로 안 되면 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동서양의 고대 철학이 도덕과 법의 관계에 있어 사실 상당히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의 폐단
사회가 법에 너무 의존하면 폐단이 생길 수 있다. 사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법 제정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것은 ‘법은 너무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하며,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자주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복잡하지 않아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법은 너무 복잡해졌으며 법률체계도 너무 번잡해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스카우슨 교수는 ‘언젠가는 미국이 법을 다시 줄이고 단순화하는 하우스 클리닝(House Cleaning)을 해서 번잡하고 쓸데없는 것을 걷어내고, 명료하고 간명하고 일관성 있는 법을 다시 제정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제시한 22번째 건국 원칙은 ‘인치가 아닌 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