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은 운영하던 그는 한때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다.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 순수익이 그 당시 돈으로 100만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1997년 IMF가 닥쳤다. 사업은 순식간에 기울었고, 결국 3억 5천만원이라는 커다란 빚만 남았다.
사연의 주인공 이종룡 씨는 채권자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겠다고 약속한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하루 2시간도 채 자지 않고 최대 10개에 이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그의 일과는 살인적이었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끝내고, 아침에는 떡 배달, 오후에는 학원차 운전을 한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신문판촉과 폐지 수집을 한다.
밤 9시 전주에서 군산까지 떡 배달을 하고, 목욕탕으로 향한다. 목욕탕 보일러실에서 한 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목욕탕 청소를 한다.
그리고 새벽 내내 준비 및 신문 배달을 하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하루 450만원 정도.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돈은 빚을 갚는 데 쓰였다.
어느덧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고, 이종룡 씨는 마지막 100만원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지난 시간을 떠오르며 그의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얽힌 듯,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2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벗어나 부인과 단둘이 살 수 있는 전세방을 얻는 게 꿈이라고 했다.
2008년 MBC ‘시사매거진2580’ 등 여러 방송을 통해 그의 사연이 소개됐고,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빚을 다 갚은 후 이종룡 씨는 “내 몸이 편안하면 다시 옛날에 방탕했던 모습이 튀어나올까 일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서 7개의 아르바이트를 계속해나갔다.
2009년에는 <3억 5천만원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빚을 갚았던 10여 년의 세월을 담아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12년 대장암으로 쓰러진 뒤 2014년 2월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은 물론 많은 이가 애도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종룡 씨의 사연이 다시 전해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재조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