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격변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을 기반으로 한 패권경쟁은 여전히 긴장국면 속에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이목은 한반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G20 회의가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DMZ 방문에 쏠린 시선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의 중국 제압 정책과 인도∙태평양 라인 구축 전략과 맞물려 동북아 주변국의 군사지정학적인 역할이 중요해짐에 따라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아래는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조성환 교수와 정치 외교 현안에 대해 나눈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한·미·중’, 新 삼국지 속에 숨어있는 이슈와 진실게임을 들어본다.
▷ 한국은 미중 무역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다. 특히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 경제를 다양하게 진단하기도 한다. 현재 중국 경제를 어떻게 보는가
미·중 무역전쟁을 말하려면 중국의 지나온 변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무역전쟁은 무역만이 이슈가 아니다. 기술이나 금융 전반에 관련된 문제다. 미국이 왜 중국을 공격하는지 살펴보려면 중국 전반의 정치와 국제무대에서의 형태를 알아야 한다.
중국의 경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융화돼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맞춰 서로 절충하고 조합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자유화되고 사회주의가 안락사하는 길로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을 강화하고 개방을 확대하면서도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바로 국유기업화의 방향을 어떻게 전환하는가였다. 이때 모델로 삼은 게 한국형 대기업 모델이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증시를 도입하는 등 글로벌 마켓에서 한국형 대기업을 벤치마킹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잘 전환했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와 접속하면서 국유기업은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 중국이 개혁·개방할 당시 한국형 모델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한국은 60~70년대 수출주도형 국가 발전 전략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사실 우리 경제는 국가 관료가 아주 높은 수준의 가이드로 발전한 일본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농촌의 유휴 노동력을 도시 산업노동력으로 변경시킨 박정희 모델의 성공 부분도 있지만, 1948년 한국이 민주 공화국을 만든 뒤 운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원조를 받아 가장 먼저 행정체제와 교육체제부터 정비한 데도 있다. 사실 박정희 모델을 뒷받침할 역군들은 그런 교육시스템이 있었기에 수급 가능했다. 국민들의 교육열과 ‘하면 된다’는 정신력, 리더의 강력한 결단력, 이런 것들이 합해져 한국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할 당시 덩샤오핑은 소비에트 모델의 중앙집권화 또는 중국형 자립모델로 가는 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민들이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하는 방식을 찾다 보니 박정희 모델이 눈에 띄어 이를 차용했다. 한국은 1960년대 위에서부터 국가가 강력하게 외부 자본을 끌어들였다. 처음엔 자존심을 버리고 일본의 배상금을 받았고, 서독에 간 고학력 광부들, 간호사들 등 서독 정부로부터 받은 자금과 베트남 참전으로 피와 맞바꾼 돈 등, 초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우리가 가진 저임금 노동 집약산업을 국제자금과 연결한 것이 박정희의 첫 모델이다.
중국의 덩샤오핑도 박정희 모델처럼 일단 제일 먼저 개방부터 했다. FDI 국제세계자본을 중국이 가진 유휴 노동력과 연결하려면 우리의 새마을 운동과 같은 게 필요했다. 사회주의 속도는 늦추더라도 국영농장에서 게으르고 나태해진 그들에게 일정 부분 소유권을 주어 자신들을 위해 머리를 쓰고 경쟁하는 그런 인간이 되게 해 기아로부터 해방하는 게 급선무였다.
▷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경제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결국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게 아닌가
소련이 망할 때 고르바초프는 자기네들은 고도 사회주의라고 하면서도 개혁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결핍경제에 있었다. 빵 하나 사려고 아침에 3~4시간 줄을 섰고, 생산 목표 100을 설정하면 30, 40, 50도 생산되지 않았다. 그것마저 중간에 착복하니깐 유통도 안 되고, 모스크바의 특권계층까지 빵 하나 먹기 어려운, 아주 묘한 한계 생산성이 떨어지는 그런 경제가 돼 있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는 게 무엇인가? 사실 마르크스나 레닌, 스탈린과 마오는 사람과 사회를 지식인들의 생각처럼 개조시키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서로 엄청난 차이를 가진 인간에게 경쟁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사는 이유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자신의 자아다. 나는 나고 너는 너고, 저들은 저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는 기준에 의해 창조적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사회가 와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사람의 부지런함, 창조성, 예의 문화 등 문명이 생기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성을 지식인의 아이디어로 개조시키고 획일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불평등하다는 이유를 들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은 난센스였다.
▷ 무역전쟁은 무역만 아니라 기술, 금융 전쟁까지 확산하고 있는데, 이런 정세 변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중국의 개방과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공산당의 해체로 20세기에 냉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성장에 비추어 시간을 두고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 일부는 상당 부분 인정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됐다는 게 드러났다.
특히 시진핑은 차기 주석으로 낙점된 이후 사회주의 성격이 다시 강화되는 방식으로 갔다. 그 다음에 국제정치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면 국제적인 영향력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치열하게 벌어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안으로 국가주의적 통제가 강화되고 밖으로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을 본격화했다. 한국형으로 대기업화해 나가던 중국의 국영기업이 다시 당과 군이 실권을 잡고 국가의 국력을 옛날 전체주의처럼 총 집결하는 방식으로, 안으로 디지털 전체주의적 통제, 밖으로 중화주의적 천하체제를 내세우며 이미 국제사회의 문명적 표준이 된 주권체제에 도발이 가속되었다. 중국은 역사와 문명을 거스르게 됐다.
첫 번째가 바로 주권 도발이다. 현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법적 요소가 주권 평등의 원칙이다. 아메리카에 있는 몇 백만밖에 되지 않는 도시 국가라도 국가로서 함부로 간섭할 수 없고 주권국가로서 대우해야 한다. 이처럼 서양의 주권체제는 국가의 크기와 상관없이 평등하다. 유엔 체제에서도 국가 간 권리와 의무를 법적으로 잘 구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중국은 갑자기 평화굴기, 중국몽, 일대일로를 들고 나섰다.
사실 주권국가 원칙을 가장 많이 강조해 온 나라는 중국이다. 마오쩌둥이 죽의 장막을 치고서 천하대란을 할 때 국제사회가 ‘너희들 그러면 안 된다’고 했을 때도 중국은 국내 불간섭 원칙을 들고나왔다. 최근 6.4 천안문사태 때 왜 그렇게 살육했느냐고 물었을 때도 리펑 총리는‘너희는 너희들대로 서양 원칙이 있듯 중국은 중국대로의 원칙이 있다’며 내정 불간섭 원칙을 꺼냈다.
이런 중국이 어떻게 남의 나라 필리핀 연해 남사군도 산호초 위에다, 우리의 현대국제법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방식으로, 더구나 필리핀을 윽박지르고 매수하는 방식으로, 군사시설까지 만든 것은 남의 영토를 불법 강점하여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공존하고 협력하게 하는 규범이자 제도인 주권체제를 향해 전쟁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중국의 이익 확보 문제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사 전체 인류에 대한 도발이다.
이것을 왜 주권 침해한 도발로 보느냐 하면, 이는 나 같은 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떤 나라의 평범한 시민들까지도 ‘아니다’고 한다. 사실 책임 있는 국가일수록, 강대국이 되려는 국가일수록 주권체제를 깨트리는 게 아니라, 이 주권체제를 보호해 주는 보장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경제 성장의 힘을 중국식 천하치계(天下治計)라고 하는 과거의 국제 질서관으로 현대주권 질서에 대해 도발했다. 이 부분은 중국이 리더로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 가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자기모순이다. 제1도련선을 가지고 한반도 사드 배치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영향권에 넣고, 대만과 남사군도 비행장까지 합해 진주목걸이 일대를 통해 해상대륙 전체를 석권하려는 지정학적 팽창을 꾀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정당하고 적법적인 두 가지 요소를 내세워 전후 세계질서를 주도하였다. 미국이 전승 5개국을 묶어 만든 타국의 주권 침탈을 위한 군사 행위를 금지시키는 국제법을 만들어 모든 국가들의 주권적 권리가 강화되고 호혜평등이 심화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남사군도 산호초 위에 군사시설을 만든 것은 주권침략이자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해양법을 어긴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국제법 원칙에 따라서 오래 점유하면 영토 소유를 인정받는다는 중국만의 논리를 펼치는데, 그곳은 이미 필리핀 연안으로 당연히 주권적, 지정학적 도발에 해당한다. 영토분쟁이 결코 아니다.
둘째, 중국은 또 경제적 주권 도발도 감행했다. 지식재산권 절취, 기술이전 강요, 부실 국영기업 지원 등, 일대일로 정책도 상대국 독재자를 돈으로 매수해 ‘부채 함정(debt trap)’에 빠뜨리는 명백한 경제주권 침해 행위에 속한다. 이처럼 주권원칙을 깨는 경제 도발은 미국의 문제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다. 그동안 여타 국가들은 중국의 시장을 잃을까 봐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미국은 중국이 죽의 장막으로부터 나와 세계사 보편에 합류할 수 있도록 WTO 가입도 주선하는 등 실질적인 후원을 했다. 국제적 규범에 못 미치는 데도 실질적인 시장을 내주고, 중국의 발전은 세계사 경찰국가인 미국이 포용(embracement)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미국의 이익에도 직결됐지만 당시 미국은 중국을 도와 국제적으로 중요한 국가로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주면 중국이 서서히 자유화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되어 중국은 국제법 원리, 무역통상의 원리, 통상의 공정성을 역이용했다. 군사, 경제 문제에서 미국과 협의해 국제사회의 누가되지 않도록 하던 중국이 ‘도광양회(韬光养晦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를 버리고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자 미국이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 미국의 중국 견제를 초강대국의 횡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9월 25일 트럼프의 유엔 연설에서도 언급됐고, 한 달 뒤 10월 4일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에서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입장을 완전히 표명했다고 본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을 조종해 OPEC이 석유로 장난하도록 세계를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고, 베네수엘라에서도 차베스 정권을 도와 자원사회주의화 했다. 미국은 중국의 활동이 세계 시장경제를 교란하는 경제 침략적 정책이라고 봤다.
특히 4차 혁명시대는 기술을 투명, 공정, 호혜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기술을 국제 통치 힘의 확대에 사용한다든지, 아니면 정치적 통제 지배, 반인권적 도구로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이게 바로 21세기 문명국가의 표준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미 이런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을 잃었다.
중국은 화웨이, CC TV 등 이미 알려진 것만으로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스탈린보다 더한 5G 기술(디지털 디바이스로 표현함) 방식으로 신장 위구르인들 백만 명 이상을 강제 수감하고, 반체제 인사들 등 자국민의 인권 탄압 통제 수단으로 소위 말해서 조지 오웰의 오웰리언, 동물농장식 전체주의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20세기 전체주의를 경험한 서양 지식인들과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가장 위대한 진보는 인간이 독립적인 권리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책임을 진다는 부분을 빼면 현대 문명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미국은 단순히 중국을 경제력이 비등해지면서 사사건건 경제적으로 싸우겠다고 하는 것 이상의 중국의 이런 형태에 대해 인류의 규범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도발로 본 것이다. 미국은 중국도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 국가 간 상호 협의하는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롯데그룹이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고 깡패들이 중국 내 롯데마켓의 창문을 부수고 불매운동을 하는 등 폭력적 행위는 현대문명 국가라면 도저히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최근 삼성과 현대가 세워두었던 현판을 다 때려 부수는 등 이런 모습을 제3의 기업들이 보면 저게 무슨 국가냐, 너무나 힘이 강한 깡패국가라고 생각했을 때 향후 3년간 중국이 눈치채지 못하게 정리해 제3 국가로의 이동을 결정할 것이다. 화웨이가 없더라도 그런 행동을 하면 중국은 공동화될 수 있다.
지난해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보면 왜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나열돼 있다. 결국 미국이 경제적으로 전쟁할 수밖에 없고 이는 동아시아의 자유화와 가장 큰 운명적인 미션하고 연결된다는 암시도 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