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부터 2.2.까지 대구에서 세계적인 션윈 뉴욕(국제)예술단의 순회공연이 있었다. 1.31. 주말을 이용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친구부부와 함께 공연장으로 향했다.
사실 작년에도 공연을 보았는데, 금년에는 어떤 장르가 새롭게 선보일까 하는 조바심마저 일어났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전개되는 각종 내용들은 작년과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신선하면서도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공연이 물 흐르듯이 전개되고 나도 그 속에 몰입되는 과정에서 “이백이 술에 취하다”(李白醉酒)라는 장르를 접하고는 나도 이백과 함께 술에 취해 자연 속에 드러누워 천지와 합치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 내용은 “이백이 벗들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우인회숙”(友人會宿 : 공연 중에서 자막 없이 성우가 중국어로 낭낭히 읽음)이라는 시를 짓고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러한 이백의 뛰어난 재능에 감동한 月宮월궁의 선녀가 선녀들의 아름다운 춤을 선사한다. 꿈속에서 선녀들의 춤을 감상한 후 이에 격동된 취중의 이백이 붓을 들어 천고의 걸작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의 삶속에서 술의 역할, 우리는 왜 술을 마셔야만 하는가? 나아가 술에 취해 적막한 산에서 홀로 쓰러져 잠든 이백의 내면은 어떤 상태일까? 등등 가지가지 상념이 일어난다. 그래서 술에 대한 고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이백이 이날 이렇게 술을 마시게 된 배경 그리고 이 공연에서 주요 주제로 등장하는 이백의 시 등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본다.
왜 우리는 술을 마시는가?
고대 동양 사회에서 술은 그들의 삶 속에서 떨어질 수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수많은 문인, 제왕이하 크고 작은 벼슬아치, 남녀노소 및 부귀빈천을 가리지 않고 상봉과 이별에 임해서, 또는 기뻐서 슬퍼서 등 각종 구실을 붙여서 술을 마셔왔다. 여기에서는 술을 마시게 되는 구체적 정황과 관련하여 고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도연명 등 중국 고대 시인들의 시 몇 구절을 소개해본다.
일찍이 진나라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有酒盈樽유주영준,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 술이 독에 가득하여, 항아리와 잔을 끌어당겨 자작한다….”하였다.
당나라 왕유는 벗을 보내면서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 그대여 다시 한잔 술을 쭈욱 마시게나, 서쪽 양관을 나서면 벗조차 없을 것이다….”
이백도 月下獨酌월하독작(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며)에서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 꽃 속에 묻혀 한 동이 술을 놓고, 홀로 잔 기울이는데 벗조차 없구나…”하면서 술을 마셨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도 “…借問酒家何處有차문주가하처유,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시름을 달래려) 술집이 어디 있는가? 물었더니, 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송나라 소동파도 장강의 적벽에서 배를 뛰어놓고 술 마시고 놀면서 “적벽부”를 지었는데 “…擧酒屬客거주속객, 誦明月之詩송명월지시, 歌窈窕之章가요조지장… : 술잔을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시경 명월의 시를 낭송하고. 요조의 장을 노래했다. (문장 마지막에)… 客喜而笑객희이소, 洗盞更酌세잔갱작. 肴核旣盡효핵기진, 杯盤狼藉배반낭자. 相與枕藉乎舟中상여침자호주중, 不知東方之旣白부지동방지기백 : 나그네가 기뻐 미소 지으며, 술잔을 씻어 다시 술을 마셨다. 안주가 이미 다 떨어지고, 잔과 접시가 마구 어지럽게 흩어졌다. 배 안에서 서로 더불어 팔베개하여 깔리고 뒤엉켜 자면서, 동쪽 하늘이 이미 밝은 것도 몰랐다.”…
등등 아무튼 술과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나 멋들어진 詩시가 너무 많아 지면이 모자랄 정도이다. 술이 자연스러운 생활 속의 일부가 되었다.
이백, 벗과 술 마시다가 취해 잠들다
당나라 때 동시대에 살면서 시인으로서 이백과 쌍벽을 이루던 시인 두보는 일찍이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에서 “…李白一斗詩百篇이백일두시백편, 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 이백은 술 한 말 마시면 시를 백편이나 짓는데, 장안 시중 주막에서 잠이 든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백이 어느 날 모처럼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모여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다가 홀가분한 분위기에 정신마저 유쾌한 듯 붓을 들고 시를 지었다.
友人會宿 벗을 만나 같이 자다
우인회숙
滌蕩千古愁천고의 시름을 씻어 없애고자
척탕천고수
留連百壺飮 연달아 백병의 술을 마신다.
유련백호음
良宵宜且談좋은 이 밤이라 마땅히 이야기는 이어지고
양소의차담
皓月未能寢 달은 밝아 잠을 이룰 수 없다.
호월미능침
醉來臥空山 취해서 오다가 적막한 산에 누우니
취래와공산
天地卽衾枕천지가 곧 이불과 베개인 것을…
천지즉금침
이백의 詩는 흔히 그 풍류가 높이 빼어나고, 정취가 호탕하여 뛰어나다고 한다. 가슴에 품은 이상은 드높았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수한 절망을 맛보았으며 삶 자체도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불만과 고뇌 속에서 때로는 산림에 은거하였고, 때로는 저잣거리나 조정을 배회하기도 했다. 動靜동정은 항상 같지 않았으며, 가고 옴도 정한 바가 없었다. 그러나 가슴에 쌓인 울분과 시름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때로는 술과 詩가 유일한 친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詩는 오언고시로서 그의 인생관을 반영한 것으로 자유분방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맞는 벗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가슴속 시름을 풀기 위해 폭탄주를 돌리듯이 쉴 사이 없이 술잔을 건넸다. 마침 달조차 밝고 좋은 밤이어서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지고 잠마저 들 수 없었다.
비틀거리면서 돌아오다가 인적이 끊어진 적막한 산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하늘과 땅이 바로 이불과 베개였다. 몸과 마음을 모두 자연에 맡겨 아마 생명과 호흡을 영원히 천지와 같이해 보고 싶지 않았을까?
月宮월궁의 선녀가 춤을 선사하다
이백은 술에 취해 내 몸을 자연에 맡긴 채 달고도 단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단잠에 빠져 있는데 꿈속에서 이백의 출중한 재능을 높이 산 월궁의 선녀가 나타나 하늘의 춤(飛天舞)을 보여준다.
선녀의 아름다운 춤을 감상한 후 꿈에서 깨어난 이백은 그 당시의 격동된 심정으로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에서 붓을 들어 또 다시 시 한편을 남긴다.
九日龍山飮 구일 용산에서 술을 마셨다
구일용산음
黃花笑逐臣 국화꽃이 만개하였는데, 나는 쫓겨난 신하가 되었다
황화소축신
醉看風落帽 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취간풍락모
舞愛月留人 춤에 빠져있는데, 달 또한 사람을 붙잡는구나!
무애월유인
그래 이왕 술에 취한 몸, 춤이나 실컷 추자꾸나! 이백은 취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러한 이백의 모습이 그의 “月下獨酌”월하독작(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며)에 잘 드러나 있다. 즉 달은 술을 마시지 못하고 다만 그림자는 나를 따라 다닐 뿐이다. 달과 나와 그림자가 셋이 되었으니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봄날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겠다고 하였다.
“…..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도 배회하듯 장단 맞추고
아가월배회
我舞影凌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어지럽게 춤추듯 흔들린다.
아무영능란
醒時同交歡 술에 깨어있을 때 우리 셋은 함께 기뻐 즐겼으나
성시동교환
醉後各分散 취해서 잠들면, 제각기 흩어진다……..
취후각분산
이백을 흔히 酒仙주선 또는 詩仙시선이라고 하는데 이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옛날 어른들도 술을 좋아 하였는데, 널리 알려진 시가 두 편을 소개한다.
호탕한 조선의 스님 震黙진묵대사(1562∼1633)도 어느 날 술에 취했다.
“天衾地席山爲枕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 삼아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닷물을 술로 삼아 술 잔질 한다.
월촉운병해작준…”
松江송강 정철도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 꺽어 산놓고 무진 무진 먹새 그려…” 하였다.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하여 시름과 괴로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마신다. 그러나 술을 한없이 마신다고 시름이 풀릴까? 고인들은 술을 마시면서 진정한 내면의 즐거움을 찾았으니 후인들도 항상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酒法주법을 모르고 함부로 술을 마시면 자칫 술자리가 어지럽게 되어 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후회의 장이 되고 만다. 나아가 술을 마심에 그 절제가 없으면 개인적으로는 몸을 망치고, 한 가정을 망치고, 나라까지 망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범부인 우리가 술을 즐겨 마신다고 이백처럼 누구나 풍류가객이 될 수도 없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에서 “唯酒無量유주무량 不及亂불급란”(술에는 오직 정해진 양이 없으니, 어지러움에 미치지 말라)이라고 하였다. 술이 아무리 좋고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술을 마실 때는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할 것이다.
글 김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