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신 일요일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수성 아트피아 주위에 버스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부산이나 경남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을 태우고 온 버스였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달 부산 KBS공연을 보겠다고 표를 예매했다가 공연이 취소되어 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공연을 보기위해 지방에서 올라 온 관객 중에는 (주) 진양유조선의 황경환(黃京煥) 회장도 있었다.
공연을 보러 멀리서 올라온 그에게 공연을 본 소감을 물었다.
울산광역시 불교신도회장이자, 초기불전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이기도 한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열정적으로 본인이 느낀 소감을 풀어 놓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소감을 말씀드릴 수 있는데 우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율동과 포즈라던가 움직임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았고요. 많은 성악가들이 나와서 혼탁하고 각박한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노래와 배경 스크린 위에 자막을 통해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잘 접하지 못했던 이 같은 언어에 대해 상당히 감명을 받았을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 공연 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나와서 춤을 추는 사람이나 북을 치는 사람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율동 등 모두가 훌륭했지만 그 사이 사이에 보여 지는 자막의 의미 있는 문구, 그것은 한정되고 순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성숙된 삶을 살게 하는 의미 있는 공연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이 살면 70~80세 밖에 살 수 없는데 우리 삶의 목적,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인간으로 태어난데 대해서 그럼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뭔가. 이 광활한 우주, 태양계의 가장자리 지구라는 곳에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그러다가 숨이 끊어지면 삶을 마치는, 과연 그것이 나의 삶이고 인생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가 한 번은 던져봐야 할 고귀한 질문이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장 인간적인 질문 – humanist conciousness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또 파룬궁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공연이었습니다. 지난 번 부산에서 공연이 있을 거라 해서 보고 싶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의 압력인지는 모르지만 공연 계획을 세워놓고 공연을 못하게 된데 대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또 정의롭지 못하고 위축된 우리 사회분위기에 아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대구는 좀 더 성숙된 시민의식이 있었는지 이 천여석의 좌석이 한 좌석도 비지 않고 공연장을 꽉 메워서 이 공연을 여는 모습을 보고 대구시민들의 성숙된 문화의식을 실감하게 됩니다.
– 오늘 공연 중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공연이 있었나요.
전반적인 작품의 구성이 모두 그렇습니다.
작품의 흐름 속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중간에 나오는 작품 중에서 이런 사람들은 이런 아픔이 있고 저런 사람들은 저런 아픔과 고통이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지만, 구원의 소재를 통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환희에 찬 인간의 모습. 우리는 지금 편안하고 즐겁다고 해서 내일도 그렇고 모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떻든 결론적인 한마디는 우리는 아무리 각박하고 어렵더라도 우리는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면서, 항상 윤리적인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때, 그것이 삶의 의미가 있고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공연에는) 그런 것에 대한 많은 홍보를 하고자하는 숨은 뜻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 공연 중간에 중국의 인권탄압을 소재로 한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미 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가 어떻게 다른 나라에서 탄압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중국이라는 저 거대한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세계는 국경이라는 장벽이 무너지고 인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지구상에서 어떤 민족이라도 민족주의를 고집하는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고 후진성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도 하루 속히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인권이 포함되어 있고 절차를 중요시하는 그런 사회로서 당당히 세계에 나와야 합니다. 더 성숙되고 더 번영하는 중국이 되려면 반드시 인권은 개선이 돼야하고 성숙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세계인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중국 공산당에 의한 티베트인 학살사태가 크게 보도되었는데 오늘 아침보도를 보니 독일 같은 나라는 중국이 분명히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올림픽까지도 보이콧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걸 봤습니다.
이제 중국은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1세기에는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중국이 아직도 인권을 유린하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데 모든 지상의 생명은 자유로워야 합니다.민주국가에서 보여지는 다양성이 방종이라고 오판하면 안됩니다.
아까 성악가 한 분이 “우리는 알고 있네(我們知道)”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뭘 알고 있겠습니까? 우린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국인들은 무력을, 총칼을 들이대니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요.
우리나라 역시 과거처럼 노태우 대통령 시절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 수 만 명의 생명이 죽어갈 때 입 다물고 논평 한마디 하지 못한 그런 비열한 대한민국이 되지 말고, 정의롭게 할 말은 하는 국가로 이제 우리나라도 바뀌어야 합니다.
무역을 해서 돈을 좀 더 버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이웃나라에서 인권이 말살되고 탄압받고 있을 때 입 다물고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맞이하는 이 나라에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현 대통령은 얼마 전 국익을 최우선하는 외교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그에 앞서 한 국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인 가치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말에는 분명한 각주(脚註)가 붙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되, 예를 들면 국익이 인권을 말살하는 나라에 동조하면서까지 국익을 추구할 것인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익을 우선하되 항상 정의와 사랑이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겠지요.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고 비굴한 나라로 전락하면서까지 국가의 이익에만 치중한다면 그게 무슨 국가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마 이 대통령이 말씀하신 뜻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랬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비 그치면 꽃이 피는 봄이 올것이다.
한국에 봄이 오면 중국대륙에도 봄이 멀지 않으리라. 꽃이 피는 속도는 북상하는 바람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또 노래 제목처럼, 그의 말처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가 말한 노래는 중국 국가 1급 성악가였던 테너 “훙밍”이 부른 노래로 2부 공연 말미에서 뜨거운 박수와 함께 앵콜을 받았던 노래다.
인터뷰를 끝내고 공연장을 걸어나오며 이제 정말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