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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대선, 중도·보수 양강 구도로…中 중남미 외교에 첫 균열 예고

2025년 12월 02일 오후 12:58
온두라스 대선 다음 날인 2025년 12월 1일, 한 남성이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의 신문 좌판대 앞을 지나고 있다. | Orlando SIERRA/AFP/연합온두라스 대선 다음 날인 2025년 12월 1일, 한 남성이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의 신문 좌판대 앞을 지나고 있다. | Orlando SIERRA/AFP/연합

중도·보수 두 후보 모두 대만과 외교 재개 가능성 시사
2023년 대만과 단교 이후 첫 ‘외교 노선 U턴’ 신호

온두라스 대선이 예상을 뒤흔드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중도·보수 진영 후보들이 좌파 집권당 후보를 크게 따돌리면서 정권 교체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두 후보 모두 대만과의 외교관계 재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쳐, 이번 선거가 중공(중국공산당)의 중남미 외교 전략에 첫 ‘역류’(flow-back)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1일(현지시간) 정오 무렵 온두라스 선거관리위원회(CNE)는 보수 성향의 국민당 나스리 아스푸라(67) 후보와 중도로 평가되는 자유당의 살바도르 나스랄라(72)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두 후보 득표율은 39%대 후반으로, 약 0.02∼0.03%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동률이다.

반면 현 집권당인 좌파 성향의 자유와 재건당(리브레당) 후보 릭시 몬카다(60)는 득표율 19%에 그치며 선두권 경쟁에서 멀어졌다.

유권자 표심이 좌파에서 이탈한 가운데, 새 정권이 출범할 경우 외교·안보 노선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도·보수 후보 초접전…좌파 정권 교체 가시화

아스푸라와 나스랄라 후보는 각각의 캠프를 통해 2023년 단교했던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밝혔다.

온두라스는 지난해 시오마라 카스트로(66) 대통령의 결정으로 대만과의 80년 가까운 관계를 끊고 중국과 전격 수교했지만, 두 후보가 모두 정권 교체 후 ‘노선 전환’을 시사함에 따라 외교 지형이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 상황을 “수십 년 만에 중국이 중남미에서 겪는 가장 큰 외교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중남미는 지난 10년간 대만 수교국이 줄줄이 중공 쪽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중공은 경제 협력을 약속하며 대만의 중남미 수교국들을 하나씩 ‘빼가기’ 했다.

2007년 코스타리카를 시작으로 파나마(2017년), 도미니카공화국과 엘살바도르(2018년), 니카라과(2021년)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의 손을 잡았다. 특히 2023년 대만과 단교한 온두라스가 상징적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80년 이상 대만 편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는 온두라스의 강력한 반(反)공산주의 전통 덕분이었다. 이 나라는 1980년대부터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에서 발생한 사회주의 혁명 세력 혹은 좌파 무장조직과 관련된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려야 했다. 미국 역시 중남미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온두라스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中 투자 협력 공세에 흔들린 중남미, 대만과 줄줄이 결별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외교 노선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파나마,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등 대만과 관계를 끊은 국가들 대부분은 좌파 혹은 포퓰리즘 정권에서 수교 전환이 이루어졌다.

파나마는 중도실용·포퓰리즘으로 평가받는 후안 카를로스 발렐라 정권이 들어선 후 항만 개발, 공항 건설 등 중공의 막대한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파나마운하를 보유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중공의 구애가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미니카공화국도 중도좌파 성향의 다닐로 메디나 정권 시기, 중공의 약 3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패키지 약속과 함께 대만 단교가 단행됐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은 강경 좌파이자 반미 노선을 내세웠다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자 생존 전략으로 중공과의 수교를 택했다.

온두라스 역시 좌파 성향의 현 카스트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공과 수교가 거론됐다. 냉전 시기에 공산주의 침투를 막기 위해 개입한 미국과의 역사적 갈등 경험도 배경이 됐다. 중공과 수교하면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카드’가 생긴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 영국 가디언 등은 카스트로 대통령이 2021년 대선 때도 경제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으며, 이는 좌파와 반엘리트, 반기득권 노선과 연결돼 있었다고 분석했다.

중동판 CNN으로 평가받는 알자지라 방송은 대만 외교부 관계자를 인용해 “온두라스(현 카스트로 정권)가 대만에 지나치게 큰 규모의 자금과 지원 패키지를 요구했고, 중국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하면서 가로채기했다”고 전했다.

좌파 진영, 12년 만에 정권 교체했지만 4년 만에 퇴진 위기

현 카스트로 정부는 2021년 집권 당시 “부패척결·사회개혁·경제회복”을 내걸며 보수 정권을 전복시키고 12년 만의 좌파 정부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리브레당은 ‘자유와 재건’이라는 당 명칭에 맞게 “온두라스를 재건하겠다”며 부패한 시스템, 특히 사법 개혁을 강조했다.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에서 좌파가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도 이러한 ‘체제 교체’ 프레임이 효과를 냈다.

그러나 집권 후 3년 동안 이어진 경제난으로 카스트로 정권의 지지 기반은 급속히 약화됐다. 물가 상승, 전력 요금 인상, 일자리 부족, 투자 위축 등 전체 인구 60%에 달하는 빈곤층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경제 회복이 더디다는 불만이 누적됐다.

이로 인해 “좌파는 이론은 강하지만 일을 잘 못한다”는 기존 인식이 재확인되면서 지지 이탈이 가속화됐다. 약속했던 ‘치안 개선’도 집권 초반 일부 이뤄졌으나 카스트로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따른 군경 투입이 장기화되면서 “전임 보수 정부와 차이가 없다”는 반발로 이어졌다.

대선 공약이었던 중공과의 수교와 관련해서도 약속했던 인프라·경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닛케이 아시아와 AP 통신 등은 중국이 항만·수력·신도시형 인프라 등 수십억 달러 규모 협력을 언급했지만 이후 실질적인 계약이나 착공 사례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이나 농업 협력은 대만과 수교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지역 반응도 소개됐다.

커피와 바나나 등 농산물 분야의 중국 시장 개방 효과도 기대에 못 미쳤다. 수출 농가는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시장 확대를 실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대만이 제공했던 지역 맞춤형 공공보건·농업 기술 이전 프로그램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농가들도 있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미국·대만, 보수 정권 복귀 후 외교 노선 변화 가능성 주시

미국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 아스푸라를 지지하는 등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 “민주주의가 11월 30일 온두라스 선거에서 시험대에 올라 있다”며 아스푸라 후보가 “마약왕,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데 협력할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아스푸라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잘못된 지도자를 위해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며 온두라스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른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온두라스가 베네수엘라의 길을 갈 수 있다고도 했다.

대만은 온두라스와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 국민당이든 자유당이든 어느 후보가 승리하든 중남미 지역에서 ‘중공의 첫 후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진다. 이를 계기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온두라스 군부가 선거일에 선관위에 집계자료 사본 제출을 요구하면서 관련 법 위반 논란을 일으키고, 개표 시스템 오류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등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본 기사에서는 ‘중국’을 지리적 개념이자 수천년 역사의 문명을 가리키는 용어로, ‘중공’은 현재 집권 중인 중국 공산당 정권을 가리키는 용어로 구분해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