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한중국대사는 누구? 천하이 비롯 ‘김일성대 조선어과’ 출신들 후보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의 여진이 일주일째 지속되고 있다. 한국 대통령실이 중국 외교부에 싱하이밍 대사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실질적으로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PNG)’로 지정한 셈이다.
이 속에서 싱하이밍의 향후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지난 행태를 종합할 때 당장 공식 문책을 하거나 소환·교체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 정부의 요구에 굴복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며 출구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주한중국대사관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대사 부임 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던 싱하이밍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사실상 매일 국내 각지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 공식 발언을 해 온 것과 대조적이다. 주한중국대사관은 한국 내 자국 외교관과 주재원, 기업인 등에게 “당분간 한국인과의 접촉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불필요한 접촉과 이로 인한 구설(口舌)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이다.
1964년생인 싱하이밍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점, 지난 2020년 1월 부임하여 통상 3년인 대사 임기를 넘긴 점 등을 종합하여 ‘명예로운 퇴임’을 제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막말 제조기’로 악명을 얻었던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 사례도 있다. 후시진은 필설(筆舌)로 전랑외교에 앞장 서서 중국 지도부의 호평을 받았지만, 사내 불륜 문제 등이 불거지자 사임하는 식으로 용퇴했다.
이 속에서 싱하이밍 교체는 시간문제로 비춰진다. 한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사를 ‘비토’한 상황 속에서 정상적 대사 임무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일각에선 한국에서 3년 넘게 근무한 싱 대사가 일정 냉각기를 거친 뒤 임기를 채우고 이임하는 모양새로 교체되는 게 현실적 방안일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자연 차기 주한 대사에 관심이 쏠린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사 후보는 천하이(陳海) 현 미얀마 대사이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한반도 업무를 전담하며 승승장구했다. 지난 2019년에도 차기 주한 대사로 거론됐다. 주한중국대사관 부대사(공사참사관) 재임 시 고압적인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정적으로 아주사 부사장(부국장)으로 재임할 당시 주한미군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한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졌다. “사드 배치 땐 단교(斷交)에 버금가는 조처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고 겁박하기도 했다. 이 점과 싱하이밍 파문을 종합할 때 중국 정부가 천하이의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을 요청할 경우 다시 한번 한국 정부를 자극하게 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한국 정부가 아그레망을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하이의 차기 대사 임명이 어려울 경우 다른 후보를 물색해야 한다. 중국 외교부 내 ‘한국통’ 중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는 경력을 갖춘 인물은 다음과 같다.
천하이와 더불어 차기 대사 하마평에 오른 인물은 장청강(張承剛) 주광주 중국총영사이다. 1991년 중국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하여 아주사, 주부산총영사관, 주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2005년 괘직(掛職)단련으로 충칭(重慶)직할시 융촨(永川)시 부시장으로 근무했다. 2006년 주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했고, 2010년 외교부 아주사 참사관을 거쳐 2014년 주북한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부임하여 공사로 승진했다. 2020년 7월부터 주광주중국총영사관 총영사로 재임 중이다. 장청강은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의 베이징 한중정상회담 당시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다만, 현직 한국 주재 총영사가 대사로 전임된 사례가 없는 점을 들 때 임명 가능성은 낮다. 더하여 올해 5월, 광주 5·18기념재단이 ‘2023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홍콩 인권변호사 초우항텅(鄒幸彤)을 선정하자 장청강은 총영사관 관계자와 함께 5·18기념재단을 방문하여 시상 철회를 요구했고 이것이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점도 부담 요인이다.
현직 부사장(부국장)급에서 주한 대사를 임명해 온 중국 외교부의 관례에 비춰 볼 때 천사오춘(陳少春)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도 후보군에 들어간다. 천사오춘은 베이징어언대학(北京語言大學)을 거쳐 국비 유학생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했다. 주한국중국대사관 정무참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고 본부로 복귀하여 외교부 아주사 참사관을 거쳐 현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허잉(何穎) 주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영사도 ‘한국통’ 외교관이다. 김일성종합대 조선어과 출신으로 1989년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했다. 외교부 아주사와 신문사, 주한국대사관 등에 근무했으며, 2006년 한국 주광주영사사무소 주임(참사관급)을 맡아 총영사관 개설 업무를 맡았다. 이후 주한국대사관 참사관, 총영사를 거쳐 2014년 외교부 변계·해양사무사(邊界與海洋事務司)로 복귀하였고 2016년 영사사무사 부사장을 맡았다. 2018년 괘직단련으로 광시(廣西)성 난닝(南寧)시 부시장으로 전보됐으며, 2022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 총영사로 첫 재외공관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 대사로 부임하면 사상 첫 여성 대사가 된다.
진옌광(金燕光)은 허잉 총영사의 남편이다. 한 살 연상의 허잉과는 김일성종합대 조선어과 동문인 부부 외교관이다. 한국과 외교부 본부를 오가며 근무했으며, 주한국대사관 부대사(공사참사관)을 거쳐 2023년 현재 외교부 변계·해양사무사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역대 한국통 외교관들이 남·북한을 오가며 경력을 쌓은 것에 비춰 볼 때 펑춘타이(馮春臺) 주북한중국대사관 공사도 고려할 수 있다. 펑춘타이도 한국에서 장기간 근무했다. 주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다. 그러다 랴오닝(遼寧)성 외사판공실 부주임을 거쳐 2016년 주제주중국총영사로 부임했고 현재 평양에서 부대사(공사)로 근무 중이다. 역대 주한 대사 중에는 3대 리빈(李濱)와 현 8대 싱하이밍 대사가 주북한대사관 공사참사관을 거쳐 한국에 부임했다.